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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노사정, ‘해고 없는 기업 지원’에 합의하라 / 곽정수

등록 2020-03-31 17:42수정 2020-04-01 02:08

곽정수 ㅣ 논설위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몰고 올 ‘실업 쓰나미’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올해 전세계 실업자가 최대 2740만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은 이미 구문이 됐다. 곧 나올 수정치는 3천만명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미국의 고용 사정은 이미 곤두박질치고 있다. 확진자 급증으로 경제가 마비되면서 3월 셋째 주 신규 실업급여 청구가 328만여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생산·서비스 중단과 매출 급감으로 휴·폐업과 권고사직이 잇따른다. 이번 사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견디기 힘들다는 중소기업이 10곳 중 4곳을 넘었다. 실물경제 피해도 지표로 속속 확인된다. 31일 발표된 2월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3.5% 줄었다. 9년 만에 최악이다. 3월 이후 수치는 더 안 좋을 것이다. 2월 말 기준 1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도 전달보다 14만3천명 줄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참사가 예고되는데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다. 차기 대선주자 1위인 이낙연 전 총리는 25일 “기업의 고용 유지 및 자구 노력에는 정부의 지원과 보상도 따라야 하지만, 위기를 틈타 부당하게 인원을 줄이는 기업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도 29일 “정부가 발표한 100조원의 기업 지원은 고용 보장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해고 없는 기업 지원’ 원칙을 공식화했다.

이런 제안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김대중 정부는 17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기업과 은행을 살렸다. 하지만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대량 해고를 못 막았다. 1998년 실업자는 150만명으로, 예년의 3배로 급증했다. 3%를 밑돌던 실업률도 7%까지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는 일시적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100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재정이 빠듯한데도 기업 지원에 나선 목적은 분명하다. 고용을 지키고 산업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대량 실업을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긴요하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보았듯이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 스스로 고용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코로나 사태의 극복을 위해 4만5천여명의 직원에게 1인당 1천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위기 속에서도 고용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의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30일 서울 마포구 경총 앞에서 코로나19 위기를 이용해 해고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것에 항의하고 있다.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30일 서울 마포구 경총 앞에서 코로나19 위기를 이용해 해고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것에 항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영계는 거꾸로 간다. 경총은 최근 국회에 40개 입법 과제를 건의하면서 ‘해고 조건 완화’를 요청해 노동계의 반발을 자초했다. 정부 지원을 조건으로 고용 유지를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경총 태도에 비춰볼 때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대안은 노사정 대표가 ‘해고 없는 기업 지원’ 원칙에 합의하고, 국민에게 실천을 약속하는 것이다. 비록 자율 선언이지만 한국 특유의 사회적 감시체계가 작동하면 대기업들이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과 장차관이 코로나 사태를 맞아 급여를 4개월간 30%씩 깎기로 했다. 일부에선 고통 분담을 명분으로 민간까지 임금 삭감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실업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독일의 ‘노사정 상생’은 좋은 본보기다. 기업이 고용 유지 노력을 하는 대신 노조는 노동시간 및 임금의 50% 축소를 수용했다. 대신 정부는 줄어든 임금의 60%를 지원해 결국 종전 임금의 80%를 받도록 했다. 이는 숙련 노동자의 해고로 인한 경쟁력 훼손을 막아 경기 회복 뒤 기업이 바로 반등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한국의 노사는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해왔다. 문 대통령이 약속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도 공전 중이다. 이제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노사정이 상생을 통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감염증 대처를 잘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용안정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에서도 모범을 보여 전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하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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