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들이 외국어 표현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조사했더니 ‘신문맹’이라 할 만큼 심각하더라는
보도자료(☞더보기)를 냈다. 60% 이상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외국어가 31%밖에 되지 않고 세대 간 편차도 심했다. 60% 이상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단어가 60대 이하에서는 39%인데 70살 이상에서는 7%도 안 됐다.
숨을 한번 들이쉬고 다시 보자. 당연한 결과 아닐까? 모든 세대가 외국말을 잘 알면 더 이상하다. ‘QR코드, 팝업창, 키워드, 패스워드’ 등에 대해 60대 이하와 70대의 이해도 차이가 50%포인트 이상 나고, 70대의 90%가 ‘루저, 리워드, 스트리밍, 리스펙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외국어로 인한 신문맹이 우려’된다는 건 과하다.
이 칼럼을 매주 쓰면서 두가지 각오를 하고 있다. 아는 체하지 말 것(밥맛임). 중학생이 읽어도 알 수 있을 것. 쉽게 쓰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우리말의 ‘아름다움’ 때문은 아니다. 우리말은 더럽지도 않지만 아름답지도 않다. 말에 외국어가 뒤섞이는 현상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안에 들어온 외국어는 전염성이 있거나 민족정신을 빨아먹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민주 사회에서 언어 순화는 불가능하다. 말은 스스로 굴러가게 놔두는 게 상책이다. 언어는 퇴행하지 않는다. 그저 달라질 뿐.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다. 공공언어를 인권과 평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걸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과잉된 언어 순수주의는 복잡한 언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단순화시킨다. 언어는 순화의 대상이 아니다. 자제의 대상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