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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이미 많은 트랜스젠더 정치인이 있다

등록 2020-04-09 17:23수정 2020-04-10 15:42

한채윤 ㅣ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일본에는 트랜스젠더 구의원이 있다. 이름은 가미카와 아야. 2003년에 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일본 최초의 트랜스젠더 정치인이 되었다. 유력 정당의 엘리트 출신으로 추측하기 쉽지만 30대 중반의 비정규직 ‘여사원’이 경력의 전부였고, 무소속 출마자였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당시 총 72명의 후보자 중에서 6위로 당선되었다. 트랜스젠더로 살면서 호적상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외모 때문에 투표를 하러 가면 ‘부정 대리 투표자’로 의심받기 일쑤라 유권자로서의 권리 행사도 꺼렸던 사람이 어떻게 선거에 나갈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가미카와 아야는 자신의 출마가 ‘절망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설명한다. 당시 일본엔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을 정정해주는 법이 없었다. 2001년에 여섯명의 트랜스젠더가 낸 성별 변경 신청이 모두 기각되었는데, 판결 사유는 ‘국민 전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였음’이었다. 판사는 입법부가 먼저 법을 만들어야 해결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성으로 살고 있지만 호적상엔 남성이었기에 정규직이 될 수 없었던 그에겐 이런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침묵하고 있으면 변화가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고, 당선은 안 되더라도 목소리는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트랜스젠더 성별정정법은 가미카와 아야가 당선된 직후 국회에서 법 제정 논의가 급진전되어 2004년 만들어졌다.)

일본의 트랜스젠더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에게도 곧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 총선’이나 위성정당이 판을 친 ‘꼼수 총선’으로 기록되겠지만, 역사적으론 처음으로 정당의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두명의 트랜스젠더가 나온 선거라는 점도 중요하다. 바로 정의당의 임푸른 후보와 녹색당의 김기홍 후보다. 이들이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도 가미카와 아야와 비슷하다. 임푸른 후보는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자의 입학 포기 사건 등을 지켜보면서 출마를 결심했다. 김기홍 후보는 2017년 대통령선거 당시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토론회가 계기가 되었다. 이미 존재하는 국민을 두고 찬반을 따지고, 인권 옹호는 나중으로 미루는 정치에 느낀 답답함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한다. 세명의 공통점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는 것을 ‘바꾸기 위해’ 평범한 시민에서 정치인으로 용감하게 자신부터 바꾸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엔 진영 논리가 없다. 한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한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만 있을 뿐이다. 가미카와 아야의 경우, 한부모 가정 지원, 수화를 하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필기 통역자 양성, 장루 장애인을 위한 공공화장실 개선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꼼꼼하게 챙기는 정책을 펼쳤다. 그가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거듭 성공해 현재 5선 의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국에는 이미 많은 트랜스젠더 정치인이 있다. 2006년에 이탈리아에서는 국회의원으로, 2012년엔 쿠바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5년엔 인도(시장), 2016년 필리핀(국회의원), 2017년엔 캐나다(시장)와 미국(주의회의원), 2019년 이탈리아(시장)와 일본(광역의원)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 당선자라는 역사가 추가되었다. 우리는 언제쯤 최초의 트랜스젠더 정치인의 당선 소식을 듣게 될까. 아직은 쉽지 않다. 언론은 트랜스젠더 후보들을 그저 ‘이색 후보’로만 다룬다. 하지만 ‘이색 유권자’란 말은 없지 않은가. 모두를 위한 정치가 실현되려면 당연히 다양한 인물이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트랜스젠더 정치인은 특이한 볼거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어나갈 의지를 가진 새로운 정치인이다. 선거가 정기적으로 나랏일을 할 인재를 뽑는 장이라면, 유권자의 한 표는 그 인재들을 키우는 거름과 같다. 당장은 아니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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