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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유레카, 고통과 쾌락의 변증법 / 조일준

등록 2020-04-21 20:26수정 2020-04-22 09:37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사람이다. 오늘날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시라쿠사 태생이다. 당대 지식의 보고이자 ‘세계의 배꼽’이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했다. 왕의 금관을 흠집내지 말고 순금인지 아닌지 알아내라는 지시에 골머리를 앓다가,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넘치는 물에서 힌트를 얻고 “에우레카!”를 외쳤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알았다”, “찾았다”는 뜻이다. 벼락같은 깨달음이었지만, 날벼락 같은 횡재가 아니다. 부피와 질량, 밀도에 대한 지식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번개가 한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기까지는 구름과 구름, 또는 구름(뇌운)과 지표면의 음전하와 양전하가 만나 벼락을 만들기 충분한 전기장이 축적된 상태라야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머릿속에 번쩍 불이 들어온 ‘유레카’의 순간도 앞서 축적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르키메데스는 철학, 수학, 물리학, 천문학에 정통했고 공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지렛대와 도르래의 수학적 원리, 구의 표면적과 부피 공식, 정밀한 원주율 계산 등은 그의 업적 중 일부일 뿐이다. 나선의 원리를 응용해, 낮은 곳의 물을 끌어올리는 물펌프를 발명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000년도 더 지나, 코페르니쿠스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르키메데스의 저서에서였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를 정벌하러 온 로마군 병사에게 땅바닥에 그리던 기하학 문제 풀이를 방해하지 말라고 나무랐다가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뜬금없이 아르키메데스 이야기를 꺼낸 것은 개인적인 소회 때문이다. 2006년 <한겨레> ‘유레카’ 필진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설렘과 뿌듯함은 짧았다. 중간의 긴 휴지기를 빼고도 최근 4년 연속 마감일은 꼬박꼬박 닥쳐왔다. 고백건대 ‘유레카’는 고통스러웠다.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순번을 앞두고는 며칠 전부터 머리칼을 움켜쥐곤 했다. 소재, 설득력, 신선함, 시의성, 글의 짜임새까지 걱정이 많았지만, 가장 큰 괴로움은 금세 바닥을 들킬 것 같은 역량 부족이었다. 짧은 원고를 쓰기 위해 몇 배의 공부와 확인이 필요했다.

최근 주간 <한겨레21>로 인사 이동이 되면서 그 부담을 벗었다. 마지막(?) 칼럼을 마감하며 돌아보면 ‘유레카’는 ‘고통을 내장한 쾌락, 쾌락을 유혹하는 고통’이었다.’ 책읽기가 딱 그렇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기 저작 <즐거운 지식>(1882년)은 지적 용기를 북돋워주는 아포리즘이다. 한 대목은 이렇다. “인간은 오류를 통해 성장해왔다. (…) 이 네 가지 오류의 영향을 지우고 나면 인간성, 인간다움, 인간의 존엄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던가. 디오니소스의 유쾌함이 넘친다는 이 책에서조차 이런 경구가 점잖게 뒷머리를 때린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이 깊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명료함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대중에게 심오하게 비치길 원하는 사람은 모호함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대중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을 심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겁이 지나치게 많아서 물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조일준 <한겨레21>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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