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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기철 칼럼] ‘180석’에 걸맞은 관용과 용기를

등록 2020-04-22 16:13수정 2020-04-23 02:07

백기철

역사적 전환기엔 관용과 화해를 통해 폭넓게 개혁을 밀고 가는 게 중요하다. 선거에 압승했다고 다시 완장 차고 몰아치듯 적폐몰이에 나서는 건 하수다. 이번 총선은 진보가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나라 운명을 개척하는 주력이라는 점을 또 한번 확인시켜줬다.

집권 여당 180석, 범진보 190석으로 나온 총선 결과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탓에 운 좋게 승리했다는 시각이 있다. ‘정권 심판’이 코로나에 가려 유예됐을 뿐 2년 뒤 대선은 다른 양상일 거라고도 한다. 보수 야당이나 언론은 쇄신 못한 보수의 자책골이란 뼈아픈 분석을 내놓지만 내심 억울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만약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간 지표를 보면 그래도 여당이 어금버금 1당을 지켰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년 이런저런 우여곡절에도 여당이 나름 탄탄한 우위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의 밑바닥엔 ‘격차 해소’와 ‘구체제 혁파’로 압축되는 촛불 민심이 자리하고 있다. 시대정신은 총선에서 코로나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코로나는 촛불 민심의 매개체이자 확성기였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꼭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경제 위기, 안전사고, 일자리, 노후 불안 등 우리가 미증유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게 코로나로 인해 분명해졌다. 힘없는 이, 덜 가진 이들을 사회가 보듬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촛불을 부정하고 과거로만 회귀하려는 ‘역주행 보수’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야당 심판론’이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광주항쟁 40년에 치른 총선에서 보수 야당이 궤멸적 패배를 당한 건 상징적이다. 4·15 총선은 세월호 6년을 하루 앞두고 치러졌다. 멀리는 광주, 가까이는 세월호에서 비롯된 역사의 큰 물줄기가 한바탕 굽이친 것이다. ‘광주’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반공, 수구보수, 강자독식의 ‘박정희 체제’는 여전히 뿌리 깊지만 그 생명력이 다해 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길과 촛불의 요구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때론 헛발질하고 넘어질지라도 시민의 편에서, 힘없는 자의 편에서, 위험과 불안에 처한 이들 편에 서서 묵묵히, 뚝심 있게 가라는 것이다. 또한 혁신과 공정으로 경제를 새롭게 일으켜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는 것이다.

역사적 전환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용과 화해를 통해 폭넓게 개혁을 밀고 가는 것이다. 단호하게 민생을 챙기고 구체제를 혁파해야 한다. 그 길에 되도록 많은 이들이 동행해야 한다. 역사의 고빗길인 지금이야말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때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국민을 믿고 미래로 성큼성큼 가야 한다. 선거에 압승했다고 다시 완장 차고 몰아치듯 적폐몰이에 나서는 건 하수다. 세월호를 모욕하고 광주를 험담한 이들은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했다. 과거의 진실을 차분히 밝히되 용서와 화해로 가야 한다.

박근혜는 웬만큼 죗값을 치렀다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명박의 경우 반성 없이 죄를 다투는 과정이라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김대중이 박정희를 용서하고 끌어안았던 걸 기억해야 한다. 김부겸 말대로 티케이를 끌어안아야 한다. 관용, 포용은 또 다른 힘의 원천이 된다.

북한과 일본에 대해서도 총선을 계기로 화해와 포용, 호혜평등의 원칙을 적극 펼쳐야 한다. 정치환경이 변한 만큼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검찰개혁 문제도 윤석열 총장을 마구 다그칠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중요한 건 화해와 용서는 양쪽이 함께 이루는 것이란 점이다. 남아공에서 만델라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백인 대통령이던 데클레르크가 흑백 차별을 철폐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반성과 쇄신은 화해와 용서의 전제조건이다. 반성 없는 보수는 그 대상이 되기 어렵다.

안보도 극우, 경제도 극우인 황교안식 ‘묻지마 꼴통보수’로는 미래가 없다. 보편복지에 부정적인 오세훈이 정치 신인에게 고배를 마신 건 시대의 창이 어디를 향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나마 안보는 보수, 경제는 중도·진보라는 유승민이나 안철수에게 미래가 있다.

척박한 우리 정치 현실에서 극적인 화해와 용서 드라마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협치가 한쪽 노력만으로 되진 않는다. 당장 급한 민생 문제를 두고 한가로이 모양새만 갖출 순 없다. 다만, 진심을 다해 손을 내밀고 상대의 변화를 기다릴 뿐이다.

이번 총선은 진보가 더 이상 아웃사이더, 반대를 위한 반대자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력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집권세력은 그에 걸맞은 관용과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편집인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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