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2030 리스펙트]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홍진아

등록 2020-04-26 18:38수정 2020-04-27 02:37

홍진아 ㅣ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우리 집 앞 작은 카페는 꽤 인기가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카페들처럼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한 것도 아니고, 커피 맛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니지만, 늘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적당히 조용하고, 또 이 주변에서 흔치 않게 자연 채광이 좋은 카페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이 카페의 풍경은 이곳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들로 인해 조금 달라졌다. 단단한 책상과 의자가 배치된 창가 자리는 아침 일찍 이곳으로 나와 노트북을 펴고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창가에 일렬로 앉아 온라인으로 출석 체크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 먼저 온 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해서 카페에 앉을 수 없게 된 어른 중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인데 왜 여기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를 혼잣말인 듯 크게 하는 경우도 있다. 들었지만 못 들은 척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멋쩍고 씁쓸한 공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카페에 머문다.

이 카페는 오피스텔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고, 이 건물 근처에는 다섯 개의 오피스텔이 더 있다. 오피스텔이라고 하지만 빨래건조대를 펼치고 나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는, 5평 남짓의 방 수백 개가 존재하고 있다.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이곳의 세입자들은 낮에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밤에 들어와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잠을 청하는 일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시작과 함께 일상의 풍경이 바뀌었다. 이 공간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전에 없이 더 길어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나온 것이 사회적 문제에 동참하지 않는 개인의 이기심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보낸 지난 두 달.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이 ‘다음주엔 더 나아지지 않을까’를 생각만 한 채로 시간을 보냈다. 초반에 가졌던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바람은, 이 시국이 진정되고 나면 2020년 2월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원하면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 콘서트장에서 서로의 열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노래할 수 있고, 등교한다는 말이 가방을 들고 친구들이 있는 교실로 간다는 뜻인 세상, 그것이 ‘나아지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나아진다는 말이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과 동의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고 발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두 달간,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세상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두 달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시민의 의무를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시민들의 자원의 하한선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인제야 다시 떠올린다. 그것을 모른 척하며 유지되던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 내 옆 동료 시민들이 누리는 일상의 모양은 어떤지, 우리가 말하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충분한 것인지 점검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음모론에 올라탄 이유 [세상읽기] 1.

윤석열이 음모론에 올라탄 이유 [세상읽기]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2.

달려야 한다, 나이 들어 엉덩이 처지기 싫으면 [강석기의 과학풍경]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3.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4.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지리산에서…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5.

지리산에서…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