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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영호남 지역주의? 수도권이 ‘지역’이 됐다

등록 2020-04-29 13:27수정 2020-11-18 16:43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지도부가 15일 오후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지도부가 15일 오후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다음날인 16일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였던 지역주의가 극단적으로 되살아났다”고 썼다. 호남에선 더불어민주당이 28석 중 27석을 휩쓸고 반대로 영남에선 미래통합당이 90% 이상을 가져갔다는 게 ‘지역주의 부활’의 근거였다. 다음날 <한겨레>는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정당 득표율 분석을 토대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영남 지역 득표율은 과거보다 올랐다”며 지역주의 회귀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19대 총선 이후 영남 지역, 특히 부산·경남의 민주당 득표율 추이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빠뜨린 4·15 총선의 정말 중요한 ‘지역주의’ 함의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수도권이 하나의 ‘지역’으로 분명한 색깔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에서 ‘지역’이란 영남·호남·충청을 의미했을 뿐, 수도권은 ‘지역’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영호남과 충청은 주요 정당의 정치적 기반으로 간주됐다. 반면에 수도권은 이들 지역 표심의 영향을 받아 여야가 엇비슷하거나, 정치 상황에 따라 진보·보수를 넘나드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았다. 지금까지 대선 레이스에서 ‘영남 후보’ 또는 ‘호남 후보’ ‘충청 후보’는 있어도 유력한 ‘수도권 후보’가 존재하지 못했던 건 이런 데 기인한 바가 컸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선거, 특히 4·15 총선 결과는 수도권이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를 넘어서 민주당의 ‘지역 기반’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수도권 유권자 수는 서울(847만명), 경기(1106만명), 인천(250만명)을 합쳐서 2200여만명에 이른다. 전체 유권자(4397만명)의 절반이다. 2012년 19대 총선 이래 7차례의 전국 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모두 승리했다.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의 19대 대선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수도권 득표 격차는 10만여표에서 50만표, 그리고 170만표 안팎으로 점점 벌어졌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면서 수도권이 ‘지역색 없는 지역’으로 바뀐 것이다.

수도권의 이런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선거 구도 변화로 보인다. 1980~90년대 민주화 세례를 받은 세대가 한국 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 과거엔 영호남 표심이 수도권의 영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선거에서 지역감정이 태동한 건 1960년대 말~70년대 초의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이제 두 세대 가까이 흐르면서 지역 표심이 더 이상 수도권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점도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견제론’이 먹히지 않은 건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미래통합당도 인정했듯이 선거 막판 영남의 보수 표는 강하게 결집했지만, 이것이 서울 강남을 제외하고 수도권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유권자 절반이 몰린 수도권의 ‘지역화’는 미래통합당엔 매우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통합당을 6%포인트만 앞서도 105만표(투표율 80% 기준)를 더 얻는다. 미래통합당이 아무리 영남을 석권해도 이 격차를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구도에서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승리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1997년이나 2002년 대선 때의 민주당처럼,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하고 집권세력이 분열하기를 기대해야 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보수 정치세력을 결집했는데도 역대급 참패를 당한 건, 더 이상 ‘보수의 통합’만으론 승리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에서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꿈은 ‘호남을 뛰어넘는 전국정당’이었다. 첫 비서실장에 경북 출신의 김중권씨를 임명하고, 다음 총선에서 그를 고향인 경북 울진에 출마시켰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전국정당이 되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영남 기반 확대를 염원했다. 두 전직 대통령 예상과는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이제 민주당은 ‘전국정당’이 됐다. 영남에서의 확장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지 모르나, 유권자 절반이 사는 수도권을 확실한 ‘지역 기반’으로 두게 된 건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미래통합당은 영남, 좀 더 정확히는 대구·경북에 갇힌 ‘지역정당’으로 전락했다.

아직도 ‘영남 보수’가 한국사회 주류인 것처럼 착각하고 4·15 총선을 ‘영호남 지역주의 부활’로 보는 철 지난 시각으론 미래통합당의 미래는 없다.

선임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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