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쪽방촌의 추모식 / 조문영

등록 2020-05-06 16:52수정 2020-05-07 09:53

조문영 l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4월8일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유영기씨의 추모식이 열렸다.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역 맞은편에 있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랜드마크가 된 고층 빌딩들이 가림막 구실을 한 덕분(?)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반 주목하지 않는다. 이곳의 거주자들은 ‘사회적 약자’라 불려왔다. 오랫동안 열악한 주거지를 전전하다 보니 질병과 장애가 생애 이력이 되었다. 평생 가난과 씨름하다 보니 혈연의 고리도 끊어진 지 오래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면서 ‘기생충’ 낙인의 표적이 되다 보니 수급이 권리라는 외침에도 무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버티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약자’로만 부르는 건 온당치 않다. 십여년 전 ‘동자동사랑방’을 만들어 공동체 실험을 거듭해온 쪽방 주민이 이웃을 층간소음 유발자로 경계하는 아파트 주민보다 삶에 더 회의적이라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빈민을 동료 시민으로 환대하는 대신 목숨 부지의 링거만 꽂아주던 정부 정책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방 주민들은 제 환경을 보듬어왔다. 다양한 친교 활동을 조직하고,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소액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라는 공제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유영기씨는 2018년부터 2020년 3월 폐암으로 영면하기까지 이 협동회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2월에 갑작스럽게 폐암 진단을 받았고, 코로나19로 국립중앙의료원의 모든 입원환자에 대해 전원 조치가 시행되면서 다른 병원을 전전하던 중 병세가 악화해 숨을 거두었다. 추모식에서 사랑방 대표 김호태씨는 “이 동네 사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 우리가 고인의 과거사를 다 알지 못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유영기 이사장의 생애를 되짚었다. 무일푼 상경, 일용직, 임금체불, 외환위기, 노숙인 쉼터와 고시원, 명의도용 피해, 질병 등 홈리스 생애 기록에서 익히 봐온 언어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언어들이 동료의 떨리는 목소리를 거쳐 십수년을 함께한 쪽방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전해졌을 때, 나는 이들이 온 힘을 다해 만든 가족의 의례에 기웃거릴 자격이 있는지 되물었다. 자랑할 업적도, 남겨줄 유산도 없는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함께 견뎌내며 탄생한 가족이다. 동자동에서 현장연구를 한 정택진의 표현대로, “경제발전 시기 공적 개입의 부재와 재개발 이익을 저울질하는 시장 논리가 중첩”된 채, “서서히 낡고 부서지고 갈라지고 마모된” 공간에서 이들은 서로의 삶과 죽음을 챙겼다. 명절 잔칫상을 차렸던 새꿈공원에서 추모 떡을 돌리고, 소식이 닿지 않는 혈연 가족을 대신해 무연고 장례를 치렀다. 분향소의 현수막 문구는 사회의 비참을 함께 견뎌낸 이들이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인사였다.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올해 초 국토교통부는 서울시 영등포구 쪽방촌을 주거단지로 정비하는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쪽방 주민을 내쫓지 않고 임대주택에 정착하게 하고, 다른 주택단지와 상업지구를 인근에 조성함으로써 “쪽방촌 주민이 고립되지 않고 쾌적한 주거단지에서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소셜믹스’”(▶관련 기사: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단지로 탈바꿈한다)를 지향했다. 지역 재생과 주거복지를 결합한 형태의 쪽방촌 정비사업이 다른 지역에도 확산될 조짐이다. 부동산 개발과 사회안전망 관리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절충안이지만, 도시 빈민의 주거권을 인정받기 위한 그간의 운동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정책 혁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셜믹스’라는 표현은 찜찜하다. 빈민의 삶은 다른 계층과 ‘믹스’되어야만 활력과 긍정을 인정받는 오명의 역사에 불과한가? ‘안전미달’ 딱지가 붙은 그 환경이 삶의 취약성을 견뎌내고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킨 도시 빈민의 노고임을 인정할 순 없는가?

동자동 일대는 아쉬움이 남는 ‘영등포 모델’조차 기약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남대문 근처 양동에서는 재개발 수익을 좇는 건물주들이 건물 안전이 미흡하다며 주민들의 퇴거를 종용하고 있다. 추모식에서 만난 쪽방 주민들은 아픈 주민과 병원에 동행하는 일에 앞장섰던 유영기씨가 코로나19로 병문안이 어려워진 시기에 외롭게 죽어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빈민의 고립을 우려하는 ‘포용개발’도, 빈민의 안전을 들먹이는 쪽방 비즈니스도, 가난한 사람들이 고된 환경에서 빚어낸 관계성을 가치의 목록에 포함할 구상은 없어 보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1.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헌재에서 헌법과 국민 우롱한 내란 1·2인자 2.

헌재에서 헌법과 국민 우롱한 내란 1·2인자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3.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김누리 칼럼]

‘-장이’와 ‘-쟁이’ [말글살이] 4.

‘-장이’와 ‘-쟁이’ [말글살이]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필요하다 5.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필요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