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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철 칼럼] ‘20년 진보 집권론’이 말하는 것

등록 2020-05-13 18:10수정 2020-05-14 02:37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정부 1기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으로 시작한 민주정부 2기는 명실상부한 진보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선거로 나타난 의석의 우위, 세력관계 변화에 만족할 게 아니라 20년, 30년을 내다보는 대개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4·15 총선 이후 이른바 ‘주류 교체론’ ‘20년 진보 집권론’ 같은 기대 섞인 전망과 주장들이 나온다. 20년 집권론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년 전 제기했는데, 이번에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들 주장은 주목할 내용이 제법 있지만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주류 교체론이 대표적이다. 이번 선거로 주류가 바뀌어 나라 모습이 전변했다는 식은 너무 나갔다. 주류를 정치권 주도세력 정도로 국한하면 몰라도 사회 전체로 보면 상황은 다르다.

당장 언론만 봐도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보수 미디어의 힘은 막강하다. 특히 보수 일색의 종편들은 보통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은 지 오래다. 극우 보수에 기반했던 재벌 체제 역시 강고하다. 월가의 큰손들 중 미국 민주당 돈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얘기는 못 들어봤다. 재계는 여전히 민주당 정권을 향해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선거 때 보수 미디어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게 다시 입증된 점,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일찌감치 4세 승계를 포기한 점 등은 보수 주류 체제가 금 가면서 생명력이 다해간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보수의 나라’에 살고 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5분의 3 의석을 차지했지만 정치 지형의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른바 ‘중대선거’로 보기 어렵다. 또 ‘2020년 체제’로 부를 만한 새로운 내용도 없다.

‘1987년 체제’, 즉 지역 구도와 거대 양당제에 기반한 오랜 정치 지형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한 다당제 시도는 좌절됐다. 두 정당의 의석 차는 제법 크지만 득표율은 8.4%포인트 차에 불과하다. 다당제, 합의 민주주의, 분권, 지역구도 극복, 리더십 교체 등에서 뚜렷이 진전된 게 없다.

‘민주화 세대’라 할 수 있는 50대 유권자가 ‘범진보’의 주축으로 등장한 건 흥미롭다. 50대 유권자는 이번에 범진보 49%, 범보수 35%의 지지율을 보였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가 50대로 진입하면서 유권자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조심스레 진보 우위의 시대를 점쳐볼 수 있다.

이해찬 대표의 20년 집권론은 장기집권에 방점을 뒀다기보다 주류 교체나 다수파 연합 형성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대표는 2018년 7월 “지난 민주당 정부 10년 성과가 불과 2~3년 만에 뿌리 뽑혔다. 20년 정도 연속해서 집권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2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30년 넘게 민주당 다수파 시대가 이어졌다. 루스벨트는 여러 진보적 정책으로 남부, 도시 노동자, 선진 자본 분파의 뉴딜연합을 구축했다. 1932년부터 1968년 대선까지 10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7번 승리했고, 의회는 언제나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20년 진보 집권론은 격차 해소, 공정, 정치개혁, 평화 등 진보 어젠다가 시대정신으로 제법 오랫동안 관철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을 만들어 장기독재를 획책하는 음모론 정도로 볼 일은 아니다. 명실상부한 주류 교체, 개혁 시대를 열겠다는 다짐이나 결의로 봐도 좋다.

보수 일각에서 이리되면 히틀러식 전체주의,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고 하는 건 패배주의적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시민의 민주역량을 얕잡아 보는 것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진보든 보수든 독재에 결연히 맞설 결의와 전통을 갖추고 있다.

보수 역시 진보적 시대정신에 발맞춰 대변신을 꾀해야 그나마 살길이 열린다. 보수가 시대적 책무를 나눠 맡을 준비가 돼 있다면 진보 우위의 시대라고 해서 집권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한국 정치에서 20년 연속 집권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국가에선 대략 10년 정도 주기로 정권이 바뀐다. 총선 결과 등을 놓고 보면 2년 뒤 대선에서 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제법 높다. 굳이 말하자면 ‘진보 집권 10년 플랜’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 정치의 역동성으로 보면 장담할 순 없는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정부 1기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으로 시작한 민주정부 2기는 명실상부한 진보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의 선거로 나타난 의석의 우위, 세력관계 변화에 만족할 게 아니라 20년, 30년을 내다보는 대개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백기철 ㅣ 편집인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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