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희 ㅣ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센터장
나는 ‘조용한 암살자’다. 188만4959명이 참여했다는 ‘꼰대 성향 검사’(KKDTI) 결과의 8가지 유형 중 하나다. 나 같은 꼰대는 ‘후배들에게 꼰대처럼 보일까 걱정’하고, ‘속으로 못마땅한 부분이 있어도 겉으로는 쿨하게 행동’한단다. 대처법은 ‘팩트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하기’, ‘그의 논리를 잘 들어 역이용하기’. 혈액형 검사처럼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나머지 7개도 비슷하다. 누구나 자기 얘기처럼 들을 수 있게 관용적이다.
꼰대 성향 검사는 불만해소 크리에이터 르르르가 ‘꼰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꼰대가 되지 말자’라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난 꼰대가 좋은데….
이 검사 43개 문항을 거치며 몇 번이나 멈췄다.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른 질문들 때문이다. ‘다수결 의사결정보다 시간이 걸려도 소수 의견까지 취합이 중요’, ‘단체나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개인의 성취감 만족이 더 중요’ 등이 그랬다. 일을 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리더나 특정 집단만이 결정을 내릴 때도, 다수결로만 할 때도, 모든 의견을 취합할 때도 생긴다.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성취감이 일치할 때도 여럿 생긴다.
맥락을 삭제하는 질문과 분석은 꼰대를 울컥하게 만든다. 코미디를 다큐로 해석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조직 불신’ 풍토가 걱정돼서다. 조직에 헌신하다간 헌신짝처럼 버림받는다는 자조는 언제부턴가 명제가 되고 있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참아주는 존재요, 언제든 나에게 갑질할 수 있는 권력집단’임이 이 시대의 새로운 상식 같다. 이 관점에서 조직과 개인이란, 목표 달성의 성취감과 성장의 기쁨을 함께하기 어려운 관계다. 이런 사회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처럼 조직과 함께 윈윈하는 사람은 태동하기 어렵다.
새로운 조직문화와 성장하는 조직을 2030과 함께 만들고 싶은 선량한 꼰대에게 ‘조용한 암살자, 만취한 장비, 투머치토커 훈장님’ 등의 유형 검사 콘텐츠는 ‘소 왓?’(So what: 그래서 뭐?)을 외치게 한다. 물론 꼰대 범죄자가 판을 치는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콘텐츠도 가끔 필요하다. 게다가 유형화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효율적인 도구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 없는 질문과 분석,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자기 본위 생각과 생활패턴, 자기 시간에 대한 강한 욕구, 예의 부족, 은근과 끈기 부족, 귀속의식 미약, 위계질서 미약’ 등은 29살 이하 사원들의 부정적 측면으로, 1994년 ‘新(신)세대 사원에 대한 인사관리 기법’(<연합뉴스>)에 나온다. 2020년 밀레니얼 신입사원에 대한 부정적 지적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그때도 지금처럼 맥락을 고려하면 답할 수 없는 단적인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지 않았을까.
지금 필요한 것은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 조직과 직장인에 대한 자조적인 풍자와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효율성이 아니다. 조직과 개인이 함께 윈윈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았다면, 그다음도 필요하다. 양쪽이 성장과 성취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물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퇴사자 3명을 떠나보낸 관리자로서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안다.
세대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 특정 유형에 대한 구분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그다음을 고민하는 자는 누구인가? 르르르 같은 고퀄 콘텐츠 제작자의 다음 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