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 ㅣ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18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익명검사 실시 뒤 자발적 검사자의 수가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도 아직 신원파악이 되지 않는 이태원 클럽 방문자 중 상당수가 익명검사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방역당국의 발표에 정확한 근거가 없다며,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클럽 방문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묻는다. 게이란 것이 알려지고 확진자로 비난받을까봐 두려움이 크다는 분석은 혐오와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숨은 이들이 많을 거라는 추측의 근거로 사용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살핀다면 방역당국의 말대로 익명검사를 받은 클럽 방문자들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성적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역대 최고, 최대의 활동을 펼치고 있고,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심으로 게이 커뮤니티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태원의 해당 클럽은 처음 방역당국의 통지를 받은 6일 밤 에스엔에스에 바로 공지를 올렸다. “지난 5월2일, 클럽 방문자 중에 확진자가 있었음을 오늘 알고, 긴급히 업소 방역 절차를 마쳤으며 현재 역학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클럽 쪽은 숨기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려서 클럽 방문자들이 검사를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인권단체들은 ‘긴급대책본부’를 꾸렸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우리 모두의 건강도 지키자고, 책망하기보단 서로가 힘이 되어주자고 위로하며 자발적 검진을 강력하게 독려하고 있다. 외국어 사용자를 위해 영어, 일본어뿐만 아니라 중국어는 간체와 번체로 된 두가지 버전까지 만들어 검진 방법 등을 적극 안내하고 있다.
이런 때에 언론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방역당국은 혐오가 사라져야 방역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익명검사 도입 등 효율적인 대처를 하고 있고, 당사자 커뮤니티와 단체들도 노력하고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사회에 던져야 한다. 그래야 ‘남들도 검사 안 받고 버티는구나’가 아니라 ‘다들 검사를 받으니 나도 어서 받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부정적 메시지가 아니라 긍정적 메시지가 갖는 힘이다.
이번에 알려진 클럽들은 시중의 잡지에도 음악 좋고 분위기 좋은 ‘핫플레이스’로 소개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성애자들도 종종 방문한다. 게이 클럽은 단순히 게이들의 집합소가 아니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든 그 누구든, 동성애 혐오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자기 자신인 채로 안전하고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성적소수자들에게 이런 공간을 만들고 지키는 일이 쉬웠을까? 역사적으로 보자면 거리에 넘쳐나는 룸살롱, 나이트클럽 등과 성적소수자들의 공간은 다른 의미가 있다. 게이 클럽이라 하여 ‘게이’에만 방점을 찍고 마치 악의 근원처럼 다루는 것은 그래서, 존재에 대한 모욕이자 폄하다. 이성애 교회, 이성애 룸살롱, 이성애 콜센터 등 우리는 그동안 확진자가 나온 장소, 그 어떤 곳도 성적 지향에 따라 호명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성적 지향을 구분하지 않는다. 전 지구적 규모의 전염병을 다루면서 같은 사회 구성원을 혐오하다니 어리석지 않은가.
‘동성애자의 충격 고백’과 같은 보도도 멈추어야 한다. 노래방의 실태를 밝힌다며 ‘어느 20대의 충격 고백, 노래 부르고 노는 20대가 많아 같은 20대가 봐도 너무 무책임해’와 같은 보도를 내지 않는 것과 같다. 심층 취재인 듯하지만 동성애자의 입을 빌리는 척하며 기자가 가진 혐오를 확산하는 것일 뿐이다. 또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 감염이 주 경로인데도 엉뚱하게 동성애자의 성생활을 파헤치겠다고 나선다. 분명한 한가지는, 이런 기사들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방역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론이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길 바란다. 언론은 방역의 방해자가 아니라 큰 조력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