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ㅣ 사건팀장
김재순은 26살이었다. 그는 지난달 22일 오전 10시25분께 광주의 재활용업체 조선우드에서 일하다 합성수지 파쇄기에 끼여 숨졌다. 김재순은 중증 지적장애인인데, 회사는 그가 장애를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사고예방교육도 하지 않았고, 안전장치도 없었다. 2인1조도 지켜지지 않았다. 업체 대표는 사고 발생 직후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자기 과실”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지난 4일 공개한 진상조사 중간보고서는 다른 얘기를 했다. 사고 현장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보면, 김재순은 사망 전날과 전전날 네 차례나 혼자 파쇄기를 가동했다. 한 차례 사수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 김재순이 파쇄기 상부에 올라가 폐수지를 발로 정리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재순의 작업이 예외가 아닌 일상이었고, 지시에 의한 것이었으며, 평소에도 위험 작업을 했는데 회사가 이를 방치했다는 걸 보여준다.
김재순의 죽음은 김용균의 죽음이다. 2018년 12월11일 태안화력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석탄 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그러자 원청인 서부발전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벨트가 있는 기계 안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 매뉴얼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하지만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2019년 8월 발표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의 결론은 다르다. 보고서는 “협력사의 현장운전원은 원청인 서부발전으로부터 운전설비의 이상 부위를 상세히 사진 촬영한 뒤 개선요구 사항을 발전설비관리시스템에 사진과 함께 등록하도록 요구받았다”며 “1럭스밖에 안 되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밀폐함 내의 그림자가 진 벨트 하부, 철판 기둥 위에 반쯤 숨어 있는 롤러의 이상 부위를 육안과 청력으로 확인하고 휴대전화로 상세히 촬영하려면 점검구 안으로 고개를 넣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지침에 가장 충실하게 따랐던 고인을 스스로를 죽인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역설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김재순의 죽음은 대물림된 죽음이다. 51살인 그의 아버지 김선양은 왼손 손가락 한 마디가 없다. 18년 전 작업장에서 사고를 당해 잘려나갔다고 한다. 그는 아들이 숨졌다는 소식을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난 뒤에야 들었다. 참혹하게 찢긴 주검을 수습하기 어려워 이미 화장하고 난 뒤였다. 충남의 한 업체에서 일한다는 김선양은 비정규직이어서 아들의 죽음에도 휴가를 내지 못해 야근자와 근무를 바꾸고 나서야 광주로 향했다.
김재순의 죽음이 김용균의 죽음이면서 동시에 대물림된 죽음이라는 사실은 이 죽음이 노동자 개인의 책임일 수 없다는 진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사고가 일어나면 죽음의 원인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과실 흔적을 은폐하기에 바쁘다. 여기에 사회는 미온적인 처벌로 화답한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 동안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으로 이뤄진 1심 판결 6144건 가운데 0.57%인 35건에서만 금고·징역형이 선고됐다. 고용노동부의 ‘산안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2018)를 보면, 산안법의 처벌 대상은 공장장과 사업소장, 현장소장 등 안전보건관리 책임자가 35.7%로 가장 많았다. 원청 사업주나 최고경영자는 책임을 피하기 쉬운 구조다.
김재순의 죽음은 김용균의 죽음이다. 2018년의 죽음이 비통함에만 머물지 않았다면 2020년의 죽음과 죽음을 방치하는 사회의 역설은 진즉에 중단될 수 있었을 것이다. 21대 국회가 이 죽음의 책임을 제대로 묻는 제도를 만드는 일로 발걸음을 떼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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