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페이지 ㅣ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코로나19 대유행은 각국 정부에 여러 사회 정책적 딜레마를 야기했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이번 코로나19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노동당과 스코틀랜드, 웨일스 정부 등으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지켜보자’는 기조를 정하고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지 않았다. 3월 중순에 첼트넘 경마대회 같은 대규모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영국과 달리, 한국이나 독일은 훨씬 잘 준비하고 대응했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교한 검사와 추적 시스템을 갖추고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반면 영국은 사태 초반 스웨덴의 ‘집단 면역’ 방법을 채택했으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리라는 비판에 결국 접어야 했다.
영국은 3월 중순이 돼서야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같은 봉쇄 정책을 채택했다. 필수 업종이 아닌 노동자들을 집에 머무르도록 했고 운동을 하거나 식료품, 의약품을 살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제한했다.
봉쇄 강도는 지난달부터 낮춰졌다. 정부는 안전 조치를 전제로 제조업과 건설업 종사자들의 사업장 복귀를 허가했다. 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 안에서 더 자주 바깥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이번달에는 초등학교의 단계적 개교가 있을 예정이고 다음달부터는 관광·식품 등 접객업소와 교회도 문을 열 계획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유행병에 대한 영국 사회의 준비 부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사회복지 분야 종사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개인보호 장비(PPE)가 더 많이 비축돼야 하고, 이들을 뒷받침할 예비 인력도 더 체계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또 영국의 해체된 사회보장제도의 오랜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 3~5월 요양원 사망자의 27%가 코로나19와 연관됐다. 최근 수십년간 의료체계의 위기에 대한 여러 보고서와 싱크탱크의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역대 어느 정부도 이 문제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첫 단계는 통합된 국민 건강·돌봄 서비스가 탄력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반 위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통계청 보고를 보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회경제적으로 하위 계층 사람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의 하위 10% 빈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가장 부유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2배 높았고, 런던 빈곤 지역의 표준화 사망률(사망률 비교를 위해 분모가 되는 인구 연령 구성을 조정한 것)은 전국 평균치보다 4배 높았다. 주민의 4분의 3이 외국 출신으로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는 런던 동부의 뉴엄에서는 10만명당 14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유한 지역에서 인구 10만명당 2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과 대조된다. 건강 불평등과 그 구조적인 원인을 찾는 데 시급히 나서야 한다.
영국 대중들이 최근 수십년간 보여온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타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로 정치·사회에 대해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할지 두고 볼 일이다. 보수당 정부는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등 좌파가 제시한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고, 환경주의자들이 제기한 ‘녹색경제’ 어젠다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공언한 정책 어젠다의 ‘레벨업’은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적 하위층에 더 높은 급여를 주고, 이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복지를 개혁하고, 임대주택 접근성을 높이는 것 등이다.
코로나19 이후, 새 출발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은 한정된 세수와 높은 실업률이다. 이는 사회정책 혁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존슨 정부가 자원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복지국가를 건설했던 1940년대의 노동당 정부를 본받을지, 아니면 정부 지출의 감소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은 1920~30년대의 영국으로 돌아갈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