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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미국 군부는 트럼프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등록 2020-06-08 13:33수정 2020-06-09 02:39

미국 군부는 매카시를 잡은 것처럼 트럼프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군부까지 나서서 트럼프를 낙마하려는 것은 코로나19 확산, 경제위기, 인종갈등이라는 삼중위기에 빠진 미국의 총체적인 실패의 반영이다.

지난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투입된 주방위군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지난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투입된 주방위군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상원의원님!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정말로 당신의 잔인함과 무모함을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염치라곤 없습니까? 의원님!”

이 한마디는 1950년대 초반 미국을 흔들던 매카시즘의 조종을 선포하는 말이었다. 1954년 4월 미국 상원 정부운영위원회에서 위원장 조 매카시 상원의원이 육군에 대한 공산주의 공모 혐의 청문회를 주도하던 중 증인으로 출석한 조지프 웰치 육군 법무감으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장내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당시 미국은 1950년 2월 매카시가 국무부에 200명 이상의 알려진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 발언을 시작으로 그가 주도하는 정부 안팍의 공산주의자 색출 바람이 4년 간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공화당은 매카시즘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매카시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매카시즘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2차대전 때 육군참모총장으로 승리를 이끈 전쟁 영웅 조지 마셜 전 국무장관에게까지 용공 혐의를 씌웠다. 급기야, 육군을 상대로 용공 혐의를 제기하고 청문회까지 열자, 군부가 결국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때까지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 매카시를 비판하지 못했다. 군부가 나서자 모든 것은 바뀌었다. 육군 청문회는 곧 종료됐다. 상원은 그해 12월 매카시를 상원의원으로서 불신임하는 결의를 했다. 매카시는 3년 뒤 요양원에서 알콜중독으로 숨졌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부는 대개 기존 체제의 마지막 보루이다. 특히, 미국은 더 그렇다. 미국의 확고한 문민 우위의 원칙의 핵심은 군부의 독립성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군부는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국방비는 정부 예산의 20%이고, 국내총생산의 5% 내외이다. 군부가 관련된 방위산업은 미국의 가장 경쟁력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런 군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인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가 경찰 연행 과정에서 목 졸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진압하는 데 군을 동원하라고 재촉하자, 군부에서 반발과 노골적인 비토가 터져나왔다. 트럼프의 예스맨인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군 동원을 에둘러 반대했다. 앞서 트럼프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가 퇴임 뒤의 침묵을 깨고 트럼프는 “미국민을 단합하지 않으려고 하는 내 생애의 첫 대통령”이라며 헌법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하자, 군부 안팍에서 트럼프에 대한 반발이 일고 있다.

윌리엄 맥레이븐 전 특전사령관, 마이크 뮬런·마티 뎀시 전 합참의장 등 퇴역장성들도 트럼프 낙마에 공개적으로 나섰다. 급기야, 걸프전 당시 합참의장을 지낸 전쟁 영웅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자신이 소속한 공화당의 대통령인 트럼프가 아닌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와 군부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자신의 구호에는 군부가 결정적임을 알았다. 그래서, 국방 예산과 핵무기 증강 등 군부의 숙원을 들어주고, 어떤 대통령보다도 군부 인사들을 행정부에 발탁했다. 민간 출신이 맡는 것이 불문율인 국방장관에 해병 4성 장군 매티스를 임명하고, 안보보좌관에 마이클 플린, 맥 매스터 등 군 장성들을 임명했다. 백악관 비서실장에도 군 출신 존 켈리를 발탁했다. 이들 모두는 트럼프와 척을 지고는 떠났지만, 현재도 국방장관은 에스퍼, 국무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로 모두 육사 동기생들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나토 등 동맹체제에 대한 폄하, 시리아·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한반도에서 연합훈련 중단 등으로 군부의 내부 반발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는 트럼프가 북한·이란 등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위협하는 등 ‘미국 대외정책의 과도한 군사화’(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를 주도하면서도, 군의 전통적 몫을 줄이는 형용모순의 정책이었다. 어쩌면 군부의 진짜 불만은 기존 동맹을 강화하기보다는 적과의 타협을 주도하는 트럼프의 비주류적 정책 때문일 것이다. 시위에 대한 군 동원은 군부의 이런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명분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주장이라해도, 군부가 나서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미국은 이제 그럴 정도로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군부는 매카시를 잡은 것처럼 트럼프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19 확산, 경제위기, 인종갈등이라는 삼중위기에 빠진 미국의 총체적인 실패의 반영이다.

정의길 ㅣ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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