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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안심소득제’ 활용하기 / 김수헌

등록 2020-06-21 16:53수정 2020-06-22 02:36

김수헌 ㅣ 경제팀장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번지고 있는 기본소득제에 대해 진보진영의 주류, 특히 기존 복지제도 강화를 주장하는 복지 전문가들은 여럿 반대한다.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면서도 급여의 하향 평준화로 정작 도움이 절실한 계층에는 충분한 지원을 못 할 수 있다는 게 반대론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기본소득제는 소득보장제도로서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재분배나 소비증대 효과도 기존 복지급여만 못하다.”(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보편적 사회보장의 길을 포기하고 연간 재정 200조원으로 모두에게 월 32만원씩 나눠주자는 주장이다. 포용적 복지국가는 기본소득과 함께 갈 수 없다.”(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반대 논리는 탄탄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기본소득제와 복지강화론이 맞붙는 와중에 보수진영 한편에선 저소득층 소득 보조 확대와 근로유인 강화를 내세운 ‘안심소득제’가 새삼 관심을 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적극 홍보에 나서 주목도가 올라간 안심소득제는 보수 경제학자인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가 2016년 ‘한국적 음소득세’를 표방하며 처음 제안했다.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발간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빈곤 완화 방안으로 소개한 바 있다. 소득세의 적용 범위를 면세점 이하로 확대해 저소득층인 마이너스 소득세 대상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안심소득제는 프리드먼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다만 기존 복지제도의 대대적 축소와 소득세 단일세율 등과 같은 음소득세의 ‘우파적 급진성’을 상당 부분 거세하고 설계했다. 현실 적용 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다. 간단히 말해 가구원 규모를 기준으로 일정 소득 미만 가구에 소득 부족분의 일정 비율만큼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같은 금액을 주는 기본소득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안심소득제의 최신 버전을 보면, 4인 가구 기준 연소득 6000만원에 미달하는 가구에 부족분의 50%를 현금으로 지원하도록 돼 있다. 대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7개 급여 가운데 생계·주거·자활 등 3개 급여와 근로·자녀장려금을 폐지한다. 연소득이 1500만원이라면 6000만원과의 차액 절반인 2250만원을 보조금으로 받아 처분가능소득은 3750만원이 된다. 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엔 3000만원을 지원받는다. 안심소득론 쪽에선 현행 기초생활보장제에 견줘 저소득층의 처분가능소득이 전반적으로 늘고 근로유인도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또 저소득층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므로 소득격차 완화 효과도 크다고 강조한다. 다만 기존 복지급여 일부를 폐지하더라도 추가 예산이 40조원에 달해 재원 조달 문제는 논란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 논의 불씨를 던졌다가 한발 빼는 모양새인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얼마 전 오세훈 전 시장이 참석한 식사 모임에서 안심소득제에 관해 듣고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보수 정당인 통합당으로선 실현 가능성 낮은 ‘우파 기본소득제’를 기웃거리기보다는 ‘이념적 친화성’이 있는 안심소득제를 제대로 된 정책으로 만들어보는 게 나을 성싶다. 그게 복지 확대를 둘러싼 여당과의 생산적인 논쟁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진보 쪽에서도 ‘우파 디엔에이(DNA)’를 가졌다는 이유로 안심소득제를 백안시하기보다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사회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더라도 중·저소득층의 평상시 소득 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안심소득제 같은 선별적 현금 지급을 통해 이들 계층의 처분가능소득을 올려줄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혼란에 빠진 소득주도성장론의 새로운 동력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만약 부유층 증세를 통해 안심소득제의 재원이 마련된다면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부담을 지우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소득 재분배 효과도 더 클 것이다.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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