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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자만과 탐욕이라는 바이러스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0-06-30 18:04수정 2020-07-01 02:38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설계사무소를 개업한 초창기에 작은 시골집을 설계하면서 겪은 일이다. 집을 지을 땅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냥 흙을 붓고 시멘트로 메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아 여러 가지로 궁리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웃 어르신이 조언을 해주었다.

우물을 메울 때는 먼저 큰 돌을 집어넣고 그 위로 그보다 조금 작은 돌, 그리고 자갈의 순서로 메운 다음 흙을 덮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땅 아래로 흐르는 물의 길을 막지 않게 되어, 물은 원래 가던 길을 가게 되고 사람은 그 위에서 편안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말이 쉬워 ‘자연과의 조화’이지, 막상 편하고 쉬운 방법을 버리고 그렇게 실행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무척 신선했고, 그 말을 듣고 느낀 점이 많았다. 이후 그 생각은 내 책상머리에 붙어 있으며 항상 되새기곤 한다.

인간은 스스로 무척 강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과학과 기술이면 달이건 화성이건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룻저녁 내린 비로 도로가 물에 잠기고 옹벽이 무너지고 인명피해가 속출해도 속수무책이고, 순간의 세찬 바람에 집들이 날아가고 자동차가 뒤집히는 일을 매년 겪으면서도, 인간의 뜻대로 자연을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다며 ‘정신승리’를 구가한다.

그러나 자연은 늘 제 갈 길을 간다.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비해서 약한 존재인 인간이 살기 위해서 자신을 파악하고 자연과 타협을 해야 한다. 그게 현명한 길이다. 우리가 아는 풍수라는 것도 알고 보면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특히 도선국사, 무학대사 등의 생각이 이어지는 한국의 풍수 사상은 더욱 그렇다. 돈을 벌고 아들을 낳고 장수를 누리는 술법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가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환경친화란 소위 친환경 자재나 무농약 농산물 등에 대한 선호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자세이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에 대한 경고등이 여러 번 켜지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급한 경사지에 포클레인을 몰고 들어가서 파헤치고 그 위에 흙을 덮고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을 세워 집을 짓고, ‘앞선’ 기술로 강의 물길을 바꾸거나 가두고, 산의 허리를 잘라내고 쉽게 길을 내는 등의 일에 아무런 가책이나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생태운동가 김종철 선생의 칼럼에 담긴 메시지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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