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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대중은 왜 ‘진보’란 이름을 피했을까

등록 2020-07-14 04:59수정 2020-07-30 15:51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_01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진보’라는 단어가 주홍글씨처럼 인식되던 시대는 지났다. 민주당이 압승한 총선 결과를 ‘진보’ 개념의 확장으로 보든 또는 변질로 보든, 적어도 다수 국민이 우리 정치지형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미국에서 1930년대 루스벨트의 뉴딜 시대를 지나며 현대적 의미의 ‘리버럴’(liberal) 개념이 확립된 것처럼, 이제 한국에서 ‘진보’란 단어는 새로운 함의를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얻는 초유의 압승을 거두자 언론에선 ‘진보의 시대’, ‘진보 다수파의 시대가 열렸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이 ‘진보 다수파의 시대’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했다. ‘진보 정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했을 뿐 아니라, 입법부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넘는 엄청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총선 직후 나온 <시사인>의 선거분석 기사 제목은 ‘드디어 진보는 다수파가 되었나’였고, 그 첫 대목은 “180석은 확실히 인상적인 숫자”라는 말로 시작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해 역사적인 첫 정권교체를 이룰 때까지, 청와대와 국회 권력 모두 ‘보수’의 손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이듬해 2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회 다수당의 자리는 여전히 보수 정당 몫이었다. 경제위기(IMF) 극복과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발판으로 제1당에 도전했던 디제이(DJ)의 새천년민주당이 2000년 4월 총선에서 얻은 의석은 115석이었다. 133석의 한나라당엔 미치지 못했다.

‘진보 정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게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처음으로 원내 제1당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두 번의 집권(김대중-노무현)과 총선 승리가 ‘진보의 시대’와 거리가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쪼그라들며 다시 제2당으로 주저앉았다. 그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가 정권을 두 번이나 잡았으니까 전부 우리가 다수파인 줄 아는데 그건 택도 없는 소리다. 한국은 아직도 ‘보수의 나라’다. 반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라, 아직도 색깔 공세가 통하는 나라, 한국은 ‘진보의 시대’가 필요하다. 한참을 더 가면…”이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정부와 국회를 다시 손에 쥔 ‘진보 약진’의 파장은 2004년과는 사뭇 다르다. 단지 180석이라는 인상적인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보수 정권도 이루지 못한 ‘압도적 승리’를 2020년 민주당이 해낸 건,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인구사회학적 구성이 변했고, 지역주의는 퇴색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색깔 공세가 통하는 나라’에서 상당히 벗어난 게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1930년대 루스벨트의 뉴딜 이후 반세기 가까이 미국을 지배했던 ‘민주당 시대’처럼, 한국에도 ‘진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민주당은 ‘진보’인가, 민주당 약진을 ‘진보의 약진’이라 부르는 건 타당한가. 도대체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용어의 개념 문제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진보’란 단어가 가졌던 역사적 함의를 생각한다면 단순한 개념 정의를 뛰어넘는 본질적인 내용의 변화를 담고 있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은 <진보의 재탄생>(2010년, 꾸리에)이란 책 서문에서 “용산 참사는 서울경찰청장의 한순간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강경 보수’와 ‘온건 보수’가 양당 체제를 이루며 수십 년 대립하면서 주거 정책이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 판을 갈아야 한다. 강경 보수와 온건 보수가 한편으론 대립하며 다른 한편 의존하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타파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민주당을 ‘온건 보수’라고 규정했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구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정치적 네이밍이 아니었다. 그 당시엔 그렇게 부르는 게 일반적인 구분법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야당을 ‘진보 진영’이라 부르지 않았다. ‘진보 진영’은 재야 운동권과,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결실을 맺는 진보정당 추진 그룹을 일컫는 말이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재야·시민단체와 민주당을 함께 묶어서 부를 때는 ‘민주개혁 세력’이라고 언론에선 지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뒤엔 ‘진보정당’은 곧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당 스스로 ‘진보’로 규정되는 걸 꺼리는 측면도 적지 않았다. 군사독재는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보수 권위주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시절이었다. 민주당은 ‘진보’로 불리면 자칫 ‘색깔 프레임’에 빠져 보수 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을 걸 우려했다. 실제로 보수 집권세력은 서경원 국회의원 방북 사건이나 북한 공작원 리선실의 선거자금 지원설, 재야인사의 북한 공작원 접촉설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야당에 의혹의 그림자를 덧씌우려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박선숙 전 국회의원은 “김 대통령은 야당 시절이나 집권 기간에나 ‘진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야당 시절엔 정당의 정체성을 ‘중도개혁’이라고 정의했다. 그 시절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이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이는 것을 피하려 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라는 이름에 굴곡이 깊게 파인 건 1958년 이승만 정권 시절의 ‘진보당 사건’과 관련이 있다. 1956년 대선에서 216만표를 얻어 급부상한 조봉암을 이승만 정권은 반공법 위반 혐의를 씌워 사형시켜 버렸다. ‘진보’란 단어를 정당에서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불과 10여년 전이란 사실은 다소 뜻밖인데,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이 2000년 창당할 때 정당 이름에 ‘진보’를 넣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2007년 대선 패배로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뒤이어 생겨난 피디(PD) 중심의 정당이 스스로를 ‘진보신당’이라 부르면서 ‘진보’는 정치권에서 일반화했다. 2011년 여러 갈래의 진보정당이 다시 힘을 합쳐 만든 정당 이름도 ‘통합진보당’이었다. 국회미래연구원 박상훈 박사(전 후마니타스 대표)는 “민주노동당을 거치면서 ‘비좌파·비혁명’이지만 ‘개혁’보다는 좀 더 나간 개념으로 ‘진보’란 표현을 정치에서 많이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진보 노선’에 계층적 요소가 많이 사라졌다. 좌파, 변혁, 민중…, 이런 단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했다.

2020년 4월, ‘진보’는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누구도 민주당을 ‘진보의 가장 큰 세력’이라 부르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노동당 당원인 홍세화 ‘소박한 자유인’ 대표는 “‘진보’라고 얘기할 때 적어도 사회주의적인 전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지금 ‘진보’엔 그게 없다. 한국 사회에선 그와 전혀 무관하게 극우세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진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 결과를 ‘진보’라는 개념의 확장으로 보든 또는 변질로 보든, 적어도 다수 국민이 우리 정치지형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무상급식 무상복지’와 같은 진보정당 정책을 받아들이고, 코로나 사태 와중엔 주류 경제학자들이 금기로 여기는 기본소득 문제까지 논의하는 모습은 민주당에 ‘진보’의 색채를 강하게 덧칠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시대를 지나며 현대적 의미의 ‘리버럴’(liberal) 개념이 확립된 것처럼, 이제 한국에서 ‘진보’란 단어는 새로운 함의를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변화의 밑바닥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2003~07년의 집권 시기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진보의 가치’를 강조했다. 기업인 특강에서 “연대와 사회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내재된 가치다. 진보라야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진보 진영으로부터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며 ‘신자유주의자’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던 그는 퇴임 이후에도 ‘진보’라는 단어를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대통령의 서거가 끼친 영향이 컸다. 살아 계시는 동안엔 그렇게 (진보를) 얘기해도 전달이 잘 안됐는데, 서거라는 충격적 사건이 생기자 그동안 대통령이 해온 거, 말한 거를 국민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국민의 인식에서 진보정치,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업그레이드가 생기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갭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노무현의 ‘진보’가 한국 정치에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다음 회에는 진보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 노무현의 <진보의 미래>가 바꾼 정치지형이 연재됩니다.)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박찬수

한겨레신문사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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