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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마라

등록 2020-07-20 16:29수정 2020-08-10 15:21

트럼프가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뜯어내려고 주한미군 감축을 운운한다면, 그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필요가 없다. 진의라면, 미국과 진지하게 무릎을 맞대고 한국의 인계철선 역할을 줄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가운데)이 지난해 10월23일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오른쪽),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왼쪽)과 함께 한국군 제5포병여단의 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주한미군 페이스북 캡처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가운데)이 지난해 10월23일 최병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오른쪽), 남영신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왼쪽)과 함께 한국군 제5포병여단의 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주한미군 페이스북 캡처

“인계철선은 부정적인 용어이고 미 2사단 장병에게는 모욕적인 발언이다. 인계철선은 파산한 개념이다.” 2003년 초 현안이던 주한미군 재배치에서 정부가 요구했던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 유지에 대해 리언 러포트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거칠게 비난했다.

미국은 한국에 동두천의 2사단 등 주한미군의 한강 이남 배치를 통보했다. 한국은 미군의 대북 억지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동두천의 2사단 등은 북한이 남침하면 자동적으로 참전해, 미국의 개입을 보장하게 된다. 이는 ‘인계철선’(tripwire)이라는 개념으로 포장됐다. 인계철선이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하는 부비트랩(설치용 폭약)의 폭발장치’다.

고건 총리가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 인계철선 개념 유지를 제시하자, 러포트 사령관이 미군 장병을 총알받이로 해서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냐고 비난한 것이다.

17년이 지나서 다시 주한미군 재배치가 얘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6월 독일의 적은 국방비를 이유로 주독미군을 감축하는 조처를 밝히는 과정에서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국대사가 주한미군도 감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운을 떼었다. 지난 17일에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미 국방부가 백악관에 주한미군 감축안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펜타곤이 세계적 차원에서 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에 대한 폭넓은 재검토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구조를 점검하고 있다는 것이다.

17년 전의 주한미군 재배치도 미 군사력의 세계적 재배치의 일환이었다.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의 회피가 아니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해외 주둔 미군들을 신속기동군화해서, 주둔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분쟁 지역으로 파견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뒷받침하는 일환으로, 주한미군 재배치를 밀어붙인 것이다.

당시 우리가 우려해야 했던 것은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 회피가 아니었다. 신속기동군이 된 한반도의 미군이 한반도 주변 분쟁에 파견되면 우리도 자동적으로 말려들어갈 우려였다. 우리의 반대에 미국의 세계 전략이 바뀔 리가 없어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에서 한국의 안보 주권을 강화할 계기로 삼고자 했다. 전시작전권 회수가 그 일환이었다.

17년 전에 우려했던 대로 현재 한국 자체가 인계철선이 됐다. 격화되는 미-중 대결 와중에서 한국은 점점 미국의 대중 포위망의 전초기지로 요구받고 있다. 사드 배치에서 보여준 중국의 격렬한 보복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반도에서 미군을 감축하려는 것이 진의라면, 우리로서는 미국과 진지하게 무릎을 맞대고 한국의 인계철선 역할을 줄이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띄우는 주한미군 감축은 진의라기보다는 한국에 미군 주둔비를 더 부담시키려는 ‘뻥카’다. 미국이 주독미군 감축의 이유로 인도-태평양에서 전력 보강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주한미군 감축은 논리적 타당이 없다.

주독미군이나 주한미군 철수 보도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특정 기자가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때 <뉴욕 타임스> 기자였던 그는 펜타곤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이라크 전쟁을 보도한 인물이다. 사실 펜타곤은 해외 미군 감축에 찬성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압박 앞에 시늉만 하는 것이다. 펜타곤으로서는 한 몸처럼 움직이는 기자를 통해 트럼프에게 보이려는 언론플레이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독미군 철수에 독일 정치권은 일절 반응을 안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어떤 정치인도 언급하지 않고, 군사전문가들만 그런 징벌적인 조처는 아프리카·중동에서 미군의 작전 능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국방보좌관이던 에리히 파트는 “그 조처는 독일 안보에 아무런 영향을 못 준다. 미국이 독일에서 갖고 있는 것은 유럽과 그 이외 지역에 있는 미군의 병참에 기여하는 허브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독일에서 빠진 병력을 배치하겠다는 나라인 폴란드에서도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유럽에서 미군 철수는 유럽 안보에 매우 유해하다며 주독미군 철수 재고를 요청했다.

트럼프가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뜯어내려고 주한미군 감축을 운운한다면, 그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필요가 없다.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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