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과가 두 쪽 나듯 세상은 ‘사흘’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뉘었다. 몰랐던 자들은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8월15일부터 17일까지 이어지는 휴일을 ‘사흘 연휴’라는 제목으로 뽑자 일군의 무리가 ‘3일 연휴인데 왜 사흘인가?’라는 허를 찌르는 질문을 했다. 흔한 ‘3일’ 대신 ‘사흘’이라는 말을 곳간에서 꺼내 쓰니 어휘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4일 쉰다’는 기대와 착각을 했다.
잘못 알고 나흘을 쉬었다면 몇 명은 직장을 잃거나 ‘창피하다’란 외마디와 함께 애인에게 버림받는 시련을 겪었을지 모른다. 구글 번역기도 ‘사흘’을 ‘four days’로 번역해 혼란을 가중시켰고, 몇 년 전에 ‘사흘’을 ‘4흘’로 쓰거나 ‘나흘’의 뜻으로 ‘4흘’이라고 쓴 기자의 이름이 알려졌다.
말은 어머니로부터 평등하게 배우지만 어휘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독서량의 영향을 받고 얼마나 반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3년 안에 ‘이레 만에’나 ‘여드레 동안’이란 말을 쓴 적이 있는가? 하물며 ‘아흐레’를? ‘섣달’이 몇 월이더라? 삼짇날은? 망각은 낱말의 세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말은 거저 배우는 것이지만 기억하고 자주 써야 자란다.
게다가 말소리와 뜻은 틈만 나면 딴 데로 튈 생각만 한다. 소리만 비슷하면 무작정 엉겨 붙는다. ‘엉뚱한’이란 뜻의 ‘애먼’이 비슷한 소리인 ‘엄한’에 속아 ‘엄한 사람 잡지 마’라고 잘못 쓰는 것도 같은 이치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엔 ‘방식’의 ‘식(式)’이 떠오른다. 소리는 의리가 없다. 바람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