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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국가 바꾸기 / 박용현

등록 2020-08-18 14:19수정 2020-08-19 02:40

국가(國歌)는 나라의 정체성과 시대의 가치를 반영해 변화한다.

독일 국가인 ‘독일의 노래’는 요제프 하이든의 곡에 시인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호프만의 가사를 붙여 부르던 노래로, 바이마르 공화국 때인 1922년 공화주의를 상징하는 국가로 지정됐다. 이후 나치 정권은 “모든 것 위의 독일”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1절만 국가로 사용했다. 나치 패망 뒤 서독은 1952년 ‘독일의 노래’를 다시 국가로 채택했으나 나치를 연상시키는 1절 대신 ‘통일·정의·자유’로 시작하는 3절만 부르는 게 관행이 됐다. 보수정당은 1~3절 모두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 별도의 국가를 채택했던 동독과 통일하면서 ‘독일의 노래’ 3절을 통일 독일의 국가로 공식화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주의가 배어 있는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작사자인 프랜시스 스콧 키는 ‘노예 소유주’였고, 가사 일부의 흑인 비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을 휩쓸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 속에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키의 동상이 시위대의 손에 파괴됐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노래임에도 곡조가 영국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본래 런던 사교클럽의 권주가로 작곡된 노래다. 운동선수, 음악가, 역사가들이 새 국가 지정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일부에선 ‘흑인들의 국가’로 일컬어지는 ‘모든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라’, 존 레넌의 ‘이매진’ 등을 새 국가로 추천한다.

양성 평등의 관점에서 국가를 고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국가 ‘오 캐나다’의 가사 중 “당신의 모든 아들들”을 “우리 모두”로 변경하는 법안이 몇차례 시도 끝에 2018년 통과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새 국가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64년 국가 상징에 대한 인식 조사가 이뤄졌는데 애국가가 국가라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이 만든 국가제정추진위원회는 애국가를 교체해야 하는 여러 이유의 하나로 곡조의 절반이 불가리아 민요와 비슷하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국가 교체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분식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정작 애국가의 태생적 친일 성격은 문제삼지 않았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국가 교체의 근거로 제시한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 행적은 국가의 의미에 비춰 덮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흠결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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