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지로 ㅣ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지난 8월15일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한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5년째가 되는 날이다. 세월은 흘러 일본인 중에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소수가 됐다. 하지만 수난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 주최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300만 동포’의 희생을 애도하면서도 군사행동이 아시아에 초래한 희생은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자기중심적 역사인식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전후 50년이 되던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진보 진영인 사회당 위원장이었으나 정계 개편 때 보수 자민당과 협력한 연립정권에서 총리를 했다. 그리고 전후 50주년을 맞아 담화를 작성했다. 담화에는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해 일본의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아시아 국가들에 사죄하는 내용이 담겼다.
‘무라야마 담화’는 국제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담화 25주년이 되는 올해 새로운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국수주의가 고조되고 아베 총리 등의 가해 책임 부정 발언이 나오는 일본 내 풍조에 대해 “일본이 과거를 겸허하게 묻는 것이 일본의 명예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나라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무라야마 담화 뒤 25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자민당 정치가의 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자민당에는 보수적 입장이라고 해도 전쟁을 경험한 정치인들이 남아 있어 일본이 아시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는 점은 명확히 전제로 뒀다. 전후 그럭저럭 헌법 9조의 ‘평화주의를 유지하고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위력을 갖는 한편 해외에서 군사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노선을 지켜온 것은 다름 아닌 자민당 정권이었다. 자민당 지지자 중에는 전후 민주화, 평등화 속에서 자작농이 됐던 사람들이나 참정권을 얻은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이 자민당이 극우 국수주의 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왔다. 자민당도 어느 정도는 전후 민주주의 정당이었다.
하지만 전쟁을 경험한 정치인은 정계에서 사라지고, 전후 태어난 보수 정치인 중에는 전쟁을 주도했던 이들의 시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전쟁이 자위를 위한 것이었다느니, 서구 제국주의와의 전쟁이었다느니 하는 정당화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등 전쟁을 지도한 정치인들이 했던 상투적인 말이었는데,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치인이 늘고 있다.
왜 자민당 정치인들의 생각이 바뀌었을까? 지난 25년 동안 일본 경제는 계속 정체했고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인,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밝은 미래를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불안감과 불만을 ‘일본은 대단하다’라는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잠재웠다. 비교적 젊은 자민당 정치인들은 보수적 시민들이 자주 보이는 자기만족이나 우월감을 대변하고 있다. 과거의 악행을 반성하는 것은 성격이 어두운 사람들이나 하는 일로 치부한다.
이런 보상 심리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코로나19의 대응이 전형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가 ‘일본 모델’의 성공을 자화자찬하는 사이 일본은 피시아르(PCR·유전자증폭) 검사를 소극적으로 했고, 올여름 감염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또 인도양 모리셔스에서는 일본 해운회사가 소유·운항하는 화물선이 좌초돼 기름이 유출되는 등 대규모 해양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해외 미디어에서 크게 보도되고, 프랑스 정부는 구호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6명의 기술자를 파견했을 뿐이고, 언론의 관심은 낮다. 자신의 실수로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줬다면 이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국의 과거와 마주하지 않고 유치한 자기 정당화로 일관한다면 계속 무책임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