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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벨라루스, 코로나 위기 시대의 혁명 / 슬라보이 지제크

등록 2020-08-30 18:28수정 2020-08-31 02:09

슬라보이 지제크 ㅣ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이번 벨라루스 시위에서 흥미로운 점은 시위대도 자신들이 비판하는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처럼 코로나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위에서 코로나의 위협이 대수겠는가. 이 소식을 듣고 있는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 시위 소식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이는 코로나 위기를 잠시 잊게 하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대규모 대중 시위, 그것도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를 끌어내리려는 시위 아닌가.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물론 우리는 이 시위를 지지해야 한다. 루카셴코는 반체제적 인사를 마음대로 체포하고 언론을 억압하며 철권을 휘두른 권위주의적 통치자다. 그렇지만 루카셴코를 그저 실패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는 벨라루스에 일정 정도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벨라루스에 경제적인 안정과 안전, 질서를 가져왔고, 분배도 이른바 주변의 “자유” 국가들보다 훨씬 공정한 방식으로 했다.

벨라루스 시위는 ‘따라잡기’ 시위다. 이 시위의 목표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자본주의적 가치를 따라잡는 것이다. 하지만 시위가 승리를 거두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의 첫 물결이 잠잠해질 때쯤이면,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국가주의적이고 극우적인 지도자가 다시 권력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루카셴코가 최근까지 상대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루카셴코는 그동안 벨라루스를 경제적·사회적 불안정과 같은 자유자본주의의 야만으로부터 보호해왔다.

최근 세계를 뒤흔든 시위는 두 가지다. 한쪽에는 홍콩, 벨라루스처럼 서구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위가 있다. 다른 쪽에는 노란 조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멸종 저항처럼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위가 있다. 이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아킬레스가 100m를 달려서 앞에 있던 거북이가 있던 지점까지 가면, 거북이는 그동안 2m를 더 나아간다. 거북이는 계속 그런 식으로 영원히 아킬레스를 앞선다. 역설이다. 하지만 같은 설정에서 처음 같은 시간 동안 아킬레스가 200m를 달린다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세차게 일어나는 이들이 아킬레스라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상은 거북이다. 이들은 대부분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그 이상이라는 것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체제를 넘어서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위험이 따른다. 하나 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위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따라잡으려 하지만, 정작 그 서구는 우리가 ‘포스트 자유민주주의’, ‘포스트 자본주의’라고 해야만 할 또 다른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그 포스트의 시대들이 디스토피아적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의 상황은 어떤가. 이제 경기가 침체해도 주가는 이와 무관하게 상승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경기와 시장이 탈동조화되어, 경기가 가라앉아도 생산과 이윤의 투자는 증가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좋은 예다. 이 회사는 점점 더 돈을 잃고 있지만, 회사의 규모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자본주의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포스트 자본주의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상황은 어떤가. 민주주의의 붕괴가 스펙터클이 되고, 우리는 그 스펙터클의 구경꾼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고 시사한다. 벨라루스의 루카셴코와 다른가?

벨라루스 시위대에게 행운을 빌어주자. 그들은 승리한 이후 새 문제와 직면할 것이다. 코로나 문제가 복수하듯 돌아올 것이고, 생태환경 문제, 빈곤 문제, 그 외 여러 문제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행운, 그리고 용기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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