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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정치적 올바름’과 뻔뻔해지는 우파

등록 2020-08-31 19:21수정 2020-09-01 02:40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 자체가 아니다. 소수집단 문제를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환원주의가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할 경우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수집단 문제의 해결 자체가 문제의 시작과 끝이라는 인식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에서 시민들이 제이콥 블레이크에 대한 경찰 무차별 총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에서 시민들이 제이콥 블레이크에 대한 경찰 무차별 총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경찰에게 피격당한 미국의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17살 백인 소년이 총질을 했다. 얼마 전까지 보기 힘들던 미국의 풍경이다. 1960년대 민권운동 이후 미국에서는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과 집회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지경까지 온 것인가?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운동에서 ‘극단적인 이슬람’이라는 표현을 비난하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대해 “앞으로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거부하고 직설적으로 말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 내 소수집단에 대한 불이익이나 차별을 피하기 위한 언어나 정책을 일컫는다. 19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1980년대부터 미국 사회에서 대학 등에서 전통적인 백인 남성 위주의 세계관을 배격하며 피압박 소수집단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강의 과목 및 학문 연구를 요구하면서 사회문화적 현상이 됐다.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흑인 교수가 흑인 관련 학문이 아니라 정치학을 가르친다고 학생들에게 비난받거나, 스탠퍼드대에서는 필수과목인 ‘서구 문명’ 대신에 비유럽·비백인 학문에 초점을 둔 ‘문화, 이념 및 가치’라는 과목으로 대체돼야만 한다고 학생들이 요구하기도 했다. 곧 역풍이 불었다.

보수 평론가 앨런 블룸은 <미국 정신의 폐쇄>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무관용성을 보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역공했다. 보수진영은 정치적 올바름을 ‘정치적인 위선’으로 등치시켰다. 1991년 미시간대 졸업식에서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이 운동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증오의 잔재들을 쓸어버리려는 칭찬할만한 열망에서 나왔으나, 이는 오래된 편견을 새로운 편견으로 대체했다”며 “미국은 무관용의 부상에 경계해야만 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정면으로 배격하자, 열광한 이들은 중하류층 백인들이었다. 1970년대부터 사회경제적인 지위의 상대적 하락을 경험하던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 앞에서 죄인처럼 숨죽여 살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피비에스>의 2018년 1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2%가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은 68혁명 이후 좌표를 잃은 진보운동에 대한 자기비판적 의미로, 정치적 교조에 집착하는 이들을 풍자하는 말로도 사용됐다.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대중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됐던 1960년대 후반까지의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가 종료된 뒤, 진보진영은 전반적인 대중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하는 운동에 실패했다. 대신 진보진영은 소수집단 차별 문제에 운동의 초점을 맞추며 진보성을 과시했다.

상대적인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을 경험하던 미국 중하류층 백인들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레이건 데모크랫’(레이건을 지지하는 민주당원)을 거쳐 공화당원으로 변신했다. 그들이 지금 견고한 트럼프 지지층이다. 반면, 68세대들은 1990년대 들어 세계화를 추동하는 일원이 됐다. 클린턴 부부가 대표적이고, 이들의 집권 기간에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68세대들이 뿌린 정치적 올바름을 밀고 나간 이들은 1980~90년대 당시 진보적 젊은층이다.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 초점을 둔 진보운동의 비전이 상실된 상황에서 이들에게 선택지란 정치적 올바름이었다.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 자체가 아니다. 소수집단 문제를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환원주의가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할 경우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원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소수집단 문제의 해결 자체가 문제의 시작과 끝이라는 인식이다.

한국에서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던 86세대의 운동이 지금 대중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으로 이어지는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86세대의 진보적 후배들 역시 미국에서처럼 소수집단에 초점을 맞추는 운동이 선택지가 됐다. 그들에게 무기는 어느 정도 정치적 올바름일 수밖에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은 한국에서도 이에 관한 논쟁의 장을 열고 있다. 사건에 대해 어떤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는 또다른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 아닌가. 86세대의 ‘내로남불’도 안 되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남용도 안 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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