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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마루, 가장 높거나 가장 낮거나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0-09-01 17:45수정 2020-09-02 02:41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마루’는 제일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로 시작하여 성스러운 장소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던 단어이다. 유래를 찾아가면 북방의 퉁구스족이 사용하는 ‘말루’(Malu)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들의 주거인 천막에서 가장 높은 기둥 아래 공간을 뜻한다. 고갯마루는 언덕의 정상을 뜻하고, 지붕의 가장 높은 곳인 용마루를 받쳐주는 부재인 종도리를 마룻대라고 한다. 종가(宗家)라고 할 때의 ‘종(宗)’ 자도 마루, 일의 근원, 근본, 으뜸 혹은 제사 등의 의미가 있다. 마루에서 파생된 마님과 마누라는 상전을 의미하고, 신라시대 왕의 호칭인 마립간도 마루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던 마루의 의미가 지금은 무척 축소되었다. “집채 안에 바닥과 사이를 띄우고 깐 널빤지. 또는 그 널빤지를 깔아 놓은 곳.” 즉 나무가 깔린 장소나 바닥재를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가장 높이 올려다보던 꼭대기에서 가장 낮은 바닥으로 내려왔으니 마루라는 단어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루는 특히 한국 전통건축의 이해를 돕는 중요한 단어이다. 집의 안과 밖 경계를 이루는 공간들에 어김없이 마루가 있다. 대청마루나 누마루, 쪽마루, 툇마루 등 그 위치나 형태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르다. 사용 목적에 따라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가령 ‘가막마루’는 사랑채에 기거하는 새신랑이 어른들 몰래 가만가만 안채의 아내를 찾아가는 길에 놓인 마루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사면이 시원하게 트여 있는 대청과 그 바로 옆에 온돌방이 공존하는, 말하자면 무더운 남방의 건축과 추운 북방의 건축이 직렬로 붙어 있는 아주 특이한 형태이다. 우리야 늘 보아온 형태인지라 익숙하지만, 비슷한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건축과는 크게 구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기후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아마 세상에서 건축을 하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일 것이다. 여름에는 열대에 가까운 고온다습한 더위이고 겨울에는 한대에 근접하는 추위에 연교차가 60도를 넘나든다. 이런 기후에서는 어떤 건축 재료도 버티기 힘들다. 그 혹독한 환경에 적합한 방식을 고민하며 여러 번의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만든 것이 한옥이라는 양식일 것이다. 이런 융통성과 응용력이 우리의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작년의 살인적인 더위에 이어 올해의 기나긴 장마를 겪으며, 기후와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는 건축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물론 아주 혁신적인 기술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조상들이 남방과 북방의 양식을 붙여 한옥이라는 형식을 발전시켜왔듯, 현재와 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과감하고 융통성 있게 접합한 건축 또한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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