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캡슐의 발명으로 가루약 먹기가 쉽듯이, 장바구니 하나면 여러 물건을 한 손에 들 수 있듯이, 단어도 문장이나 구절로 흩어져 있는 걸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약 방식의 단어 만들기에 욕심을 부린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움켜쥐고 싶은 마음. 날아가는 새를 잡았다는 느낌. 전에 없던 개념 하나를 탄생시켜 세계를 확장시켰다는 뿌듯함. 부질없는 만큼 매력적이니 멈출 수가 없다.
문장은 단어를 나열하여 사건이나 상태를 설명한다. 단어가 많아지면 기억하기가 어렵다. ‘하늘이 흐려지는 걸 보니 내일 비가 오려나 보다’라는 문장을 한 달 뒤에 똑같이 되뇔 수 있을까? 이걸 ‘하흐내비’라 하면 쉽다. 매번 속을 까보지 않아도 되는 캡슐처럼 복잡한 말을 단어 하나에 쓸어 담는다.
게다가 이전에 없던 개념을 새로 만든다. ‘시원섭섭하다’, ‘새콤달콤하다’ 같은 복합어가 별도의 감정이나 맛을 표현하듯이 ‘웃프다’, ‘소확행’, ‘아점’도 전에 없던 개념을 선물한다. ‘갑툭튀, 듣보잡, 먹튀, 낄끼빠빠, 엄근진(엄격+근엄+진지)’ 같은 말로 새로운 범주의 행태와 인간형을 포착한다. 애초의 말을 원상회복시켜도 뜻이 같지 않다. 발음만 그럴듯하면 독립한 자식처럼 자기 갈 길을 간다. 닮은 구석이 있어도 이젠 스스로 완전체이다.
언어를 파괴한다는 항의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호소가 있지만 축약어 만들기를 막을 도리는 없다. 말이 있는 한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걱정이라고? 말은 지켜야 할 성곽이 아니라 흐르는 물. 지키거나 가둬 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