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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돌봄 위기 아닌 돌봄 재난

등록 2020-09-13 15:07수정 2020-09-14 13:53

조기현 ㅣ 작가

“요즘 계속 공부를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오랜만에 들은 동료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매번 만나는 날짜를 잡고도 아이 돌봄 문제로 약속이 취소되기 일쑤였다. 결국 긴 통화로 만남을 대신했다. 코로나19 확산은 여성 동료들이 휴원, 휴교로 약속을 취소할 때 가장 먼저 실감한다. 함께 고민을 나누는 만남이나 실천해볼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건 항상 뒤로 밀린다.

동료는 노인 돌봄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엄마라는 역할이 비대해졌다. 초등학교 개학이 밀리는 상황에서 아이 돌봄을 두고 가족 간 갈등이 점화됐고, 불씨는 미래를 포기할지 말지까지 번졌다. 엄마라서 돌봄 전담 1순위인데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부와 연구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으니 여지없이 0순위로 뛰어올랐다. 사람들은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부엌에서 소설을 쓰는 ‘키친테이블 노블’처럼 아이를 돌보며 공부하고 논문을 쓰는 ‘키친테이블 논문’이 가능하다고 여기지만, 그건 해보지 않은 사람의 상상일 뿐이다.

처음에는 ‘독박 돌봄’을 하지 않겠다고 항변했지만, 자의 반 타의 반 퇴직을 하거나 가족돌봄 휴직에 돌입한 여성 지인들을 보면서 괜한 욕심을 부리는 건가 싶었다. 내 아이 돌봄으로 코가 석 자인데, 사회적 노인 돌봄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동료는 코로나19 시기 내내 아이 돌봄을 맡은 엄마와 노인 돌봄을 고민하는 연구자 사이를 헤맸다. 동료와 나는 ‘돌봄 사회화’를 주제로 자주 토론했는데, 코로나19 속 돌봄은 한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코로나19로 동료의 남편 직장도 위태위태했다. 고용이 우선이다! 돈을 벌어야 먹고살고, 가정도 유지되고, 돌봄도 할 수 있다. 돌봄은 늘 경제적 쓸모의 우선순위에서 나중을 차지한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우선순위에서 밀린 사람이 돌봄을 떠맡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픈 부모의 돌봄 앞에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이, 일 안 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결혼 안 한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우선 쓸모를 인정받았다. 비정규직이나 임금 노동이 아닌 노동을 하고, 비혼이자, 여성이라면 가족 내 돌봄행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구조는 사회적으로 돌봄노동이 중고령 여성과 이주민에게 떠넘겨지는 모습으로 반복된다. 선 고용 후 돌봄의 논리는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도 실제로 사회적 인정이 이뤄지지 않는 주요 원인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위태로운 지금, 고용과 돌봄의 선후 관계는 더욱더 굳어져 간다.

하지만 돌봄은 항상 삶의 우선이었다. 우리는 태어나서 돌봄부터 받는다. 돌봄을 받아야 사회적 활동도 하고, 경제에 참여도 한다. 연약하고 노쇠하고 아픈 사람을 누군가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을 하지도 못한다.

며칠 전 가족돌봄휴가가 최장 25일까지 연장됐지만, 여전히 무급휴가다.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봐준다는 식의 개정안처럼 느껴진다. 노동할 수 있게 봐주는 ‘편의’를 넘어서 돌봄을 볼 수는 없을까? 이제까지 고용과 돌봄은 모성보호나 가족친화라는 말로 느슨하게 연결됐다. 더 나아가 한 기업은 출산친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고 나선다.

돌봄은 좋은 노동력을 빼앗은 걸림돌이 아니라 노동과 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그러므로 돌봄은 모성, 출산, 가족을 초과하는 모든 시민의 몫이다. 고용과 돌봄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수 있는 ‘돌봄 기반의 고용안전망’이 필요하다. 전국민 고용보험이 특고, 소상공인, 프리랜서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포괄하면서 돌봄 기반의 고용안전망을 만들 수는 없을까? 돌봄 위기라는 말보다 돌봄 재난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요즘이다. 우리의 기반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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