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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999 대 1” / 김진해

등록 2020-09-13 16:22수정 2020-09-14 02:39

김진해|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어떤 언어든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게 있다. 프랑스어는 모든 명사에 남성, 여성 중 하나를 꼭 표시해야 한다. ‘사과’는 여성, ‘사과나무’는 남성. ‘포도’는 남성, ‘포도나무’는 여성.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 셋이다. ‘태양’은 여성, ‘달’은 남성, ‘소녀’는 중성! 이곳 사람들은 명사에 성 표시하기를 피할 수 없다. 페루의 어떤 원주민은 과거를 최근 한 달 이내, 50년 이내, 50년 이상 등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눠 쓴다. 셋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 써야 한다.

이렇게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요소들은 어릴 때부터 마음의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한국어에는 단연 ‘높임법’. 만만하면 반말, 두렵다면 높임말. 위아래를 항상 따져 묻는 사회, 위계 표시가 습관인 언어이다.

하지만 사회적 다수가 쓴다는 이유로 습관처럼 잘못 자리 잡은 것들도 많다. 이런 말들도 무조건 반사처럼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의식하면 알아챌 수 있고 다른 언어를 쓰는 의인을 만나면 고칠 수도 있다. 책 한 권 써서 출판하는 수업에서 있었던 일. ‘애인’을 쓰겠다는 남학생을 예로 들면서 ‘여친’이라고 부른 것이 문제였다. 한 학생이 내게 꾸짖기를, “당신은 그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겠지만 성소수자들은 ‘남자의 애인’을 곧바로 ‘여친’으로 치환하는 게 매우 불편하다. 999명에게는 자연스러운 ‘추리’지만 1명에게는 ‘배제’의 말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만나는 일상이다. 일상언어는 매 순간 우리를 소수자라고 확인시켜 준다.” 말에 반드시 표시해야 할 건 의외로 적다. 대부분은 통념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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