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국에서 때아닌 홍역이 창궐했다. 홍역 백신이 자폐를 유발한다는 낭설에 휩쓸린 시민들이 예방접종 거부 운동을 벌인 탓이다. 지석영(1855~1935)이 조선에 종두법을 도입한 1879년, 마마(천연두)를 몸에 주입한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우두 접종법’을 개발한 지 80여년이 지났지만 조선은 최신 의학에 어두웠다. 지석영은 어렵사리 장인을 설득해 두살 된 처남에게 첫 접종을 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1979년,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에서 천연두 절멸을 선언했다.
백신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병원성을 없애거나 약화시킨 뒤 몸에 주사해 후천적으로 면역성을 부여하는 의약품을 일컫는다. 주입한 병원체를 치유했던 경험을 기억하는 인체가 같은 병원체에 감염되면 신속히 퇴치하게 하는 방식이다.
제너는 소가 앓는 질병인 우두에 노출된 농부들이 천연두를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것에 착안해 1796년 우두에 걸린 암소의 고름 딱지를 떼어내 사람에게 주사했다. 백신의 시초다. 그런데 정작 영국은 이 접종법을 혐오했다. 반면 미국은 적극 수용했고, 효과가 입증되면서 세계 표준이 됐다.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1885년 자신이 개발한 광견병 예방접종법을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이름을 따 백신(Vaccination)이라 불렀다. 제너에 대한 오마주가 백신이라는 명칭의 유래인 셈이다. 이후 인플루엔자, 파상풍, 소아마비, 디프테리아 등 인류를 괴롭힌 수많은 감염병에 대한 예방 백신이 잇따라 개발됐다. 각국이 취학 전 아동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하고 있지만 종교적 이유나 잘못된 정보로 심심찮게 저항에 직면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학교보건법 10조’에 따라 초등학교 입학 전에 DTap(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백신) , 폴리오(소아마비 백신), MMR(홍역, 유행성이하선염, 풍진 백신), 일본뇌염 백신 등 4종의 예방접종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브이(V)’를 개발했다며 접종에 나섰지만 안전성 논란은 여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제약회사에 11월 대선 전 백신 출시를 압박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성급한 상용 허가로 2만7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미국 머크사의 진통제 ‘바이옥스’ 등을 상기시키며 ‘초고속 백신 개발 작전’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신승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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