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 플렉켄슈타인 ㅣ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지역 불균형은 선진국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알프스 근처 이탈리아 북부는 더없이 번영했지만 남부는 가난하다.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의 서부 해안 도시는 세계 최고 경제국답게 번화하지만 남부 시골은 딴판이다. 지역 불균형은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함의도 못잖게 중요하다.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곳에 포퓰리즘을 수반한 정치적인 극단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열광하는 이른바 ‘트럼피즘’도, 많은 유럽 나라에서 나타나는 우경화와 포퓰리즘도 지역 불균형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지역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1980년대 보수당 대처 총리의 구조 개혁 이후 수도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동부 지역에 경제력이 집중됐다. 반면 18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영국 북부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탈산업화가 진행됐다. 그 결과 북부 글래스고에 사는 사람들은 런던 중심 웨스트민스터에 사는 이보다 소득과 복지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대 수명도 10년 이상 짧아졌다. 지역 불균형은 핵심 도시 내부의 불균형도 확대한다. 서울이 그러하듯, 런던도 기회는 많지만 주거비 등 생활비가 비싸 서민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정부는 지역 불균형을 간과할 수 없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런던 정치 엘리트들에게 소외당했다고 느끼는 중북부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 부분 작용했듯이, 지역 불균형은 정치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이를 풀기는 쉽지 않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보수·진보 구분 없이 영국 정부는 런던 금융산업에 경제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문제를 풀어보려 시도했지만,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2010년 집권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경제 재균형’ 계획을 발표하고, 런던 등 영국 남동부가 아닌 중북부의 번영을 촉진하자는 이른바 ‘노던 파워하우스’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나타났다. 맨체스터와 리버풀, 리즈, 셰필드, 뉴캐슬 등 중북부 거점 도시들이 노던 파워하우스에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자원이 비교적 상황이 나은 맨체스터에 돌아간 것이다. 그나마 북부의 ‘레벨업’을 위해 새 고속철도가 제안돼 추진 중이고, 최근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영국 '행정 허브'를 대성당으로 유명한 북부 도시 요크로 이전하려 하고 있다.이 두 가지가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상징적인 조처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역부족이다.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산업정책 등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어떻게 미래 산업을 발전시켜 소외된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대학·산업의 협력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중앙집권화된 정치 구조가 점점 복잡다단해지는 경제 생태계의 의사 결정에 적합한가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듯이, 영국도 대부분의 권력이 화이트홀에 집중돼 있다.독일은 다르다. 독일은 수도 중심인 영국이나 한국과 달리 훨씬 다원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독일의 균형 잡힌 경제 구조는 지방 정부에 상당한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고, 비정부 이해 당사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분권화된 정치 구조에서 비롯된다. 위에서 내리꽂는 ‘톱다운’ 시스템이 아닌 산업·교육 정책의 실험과 혁신을 쉽게 하는 복잡한 거버넌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역 불균형을 완화하려면 다른 정치 구조가 필요하다. 점점 복잡해지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화된 정부(government)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수평화된 거버넌스(governance)가 적합하다. 영국과 한국이 독일과 같은 연방체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국과 한국 같은 지역 불균형이 심각한 나라들은 정치체제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의사 결정에 더 많은 참여와 심의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