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올가을에 집을 옮긴다. 사실 집을 옮기는 것이 아니고 살림을 옮기는 것이다.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것이 현대인의 평균적인 삶인지라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여전히 살림을 옮기는 일은 귀찮기도 하고 서툴기 그지없다.
이사는 나의 살림살이를 평가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살림이 무척 단출하다고 생각했지만 객관적인 평가는 그게 아니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이리저리 재어보더니 정량적인 분석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을 내놓았다. 결론적으로는 짐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동안 비대해진 나의 살림과 비로소 대면했다.
집 안 여기저기에 마구 쌓아놓은 책과 가구들, 보이는 대로 사서 포개놓은 화구·문구들, 입지도 않는데 수납장을 가득 채운 옛날 옷과 신발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지난번 이사할 때 상자에 담아 창고에 집어넣고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
하긴 가끔 창고를 뒤지며 저 상자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열어보질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면 무서운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기도 했다.
문득 15년 전 이사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살던 집에서 나오는 시간과 들어갈 집이 비는 시간이 맞지 않아 살림의 70% 정도를 이삿짐센터 창고에 맡겨놓고 나머지만 가지고 방 한 칸을 빌려서 석달 정도 살았던 적이 있었다.
미리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작은 살림살이로도 우리의 일상은 불편 없이 잘 영위되었다. 그때 문득 과연 나는 왜 저 많은 짐을 메고 지고 살고 있는 걸까 하며 삶에 대한, 아니 짐에 대한 실존적인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나의 삶이 바뀌었던가? 아니다. 반성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이 짐은 더욱 늘어나 이삿짐센터 사장님에게 “짐이 많으시고 책이 많으시네요”라는 칭찬까지 듣는 지경이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자랐고 일도 많았다는 구차한 변명을 뒤로하고, 몇 주째 틈이 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보고 재어보고 버리고 있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구석구석 쌓여 있는 탈피했던 나의 껍질들, 아니 나의 과거와 집착들을 드러내며, 그 사이에 끼어서 비좁게 살고 있었다고 새삼 깨닫는 중이다. 포개지는 시간과 기억을 물건으로 치환해서 남겨둔 것이다.
‘정리’란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어질러진 것들을 치워서 질서 있게 만드는 것이고, 단지 잘 모아놓는 것은 ‘수납’일 뿐이라고 한다. 집이란 사람이 살기 위한 곳이지 짐과 함께 나를 수납하는 공간은 아닐 것이다. 과연 이번에는 과감히 버리고, 제대로 정리하여 과거와 함께 수납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