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인도군 전투기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다크의 산악지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라다크/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 ㅣ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소련의 침공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투쟁을 지원한 파키스탄의 무함마드 지아 울하크 전 대통령은 “아프간이라는 땅은 항상 적당히 끓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인도 국경분쟁,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지아의 말은 숙적인 인도를 겨냥했다. 아프간의 분쟁은 세 나라가 접경한 카슈미르 지역의 정세를 유동화해서, 인도에 안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영토를 놓고 전쟁을 벌이는 등 지금까지 분쟁 중이다. 2008년 11월 시가전을 방불케 했던 인도 뭄바이 테러 공격은 인도가 점유한 카슈미르 지역의 무슬림 해방을 목표로 하는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이 벌였다. 중국도 카슈미르 영토분쟁에 관여됐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전쟁을 벌였고, 최근에는 치열한 육박전에 이어 45년 만에 양쪽이 화력을 사용했다.
지난달 31일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4자 핵심인 미-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라는 ‘쿼드’에 더해, 한국 등도 참여하는 ‘쿼드+’의 다자안보협력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아시아판 나토에 선제적으로 참여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왕따’가 된다는 소리가 시끄럽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아시아판 나토의 성사 여부는 결국 인도에 달렸다. 인도가 미국 등 서방과 손잡고 반중의 입장을 확실히 하느냐다. 최근 국경분쟁으로 인도가 ‘아시아판 나토’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된다.
그런데 중국은 왜 자신을 겨냥한 아시아판 나토까지 거론되는 이 시점에서 인도를 자극하는 것일까? 중-인 국경분쟁은 중국 입장에서는 인도에 대한 발목잡기이기 때문이다. 아프간 분쟁을 통해 인도에 안보 부담을 가하며 견제하는 것과 같은 선상이다.
지난해 11월1일을 기해 인도는 카슈미르 영토 분쟁 속에서 자신들이 통치하던 잠무카슈미르의 헌법상 자치주 지위를 박탈하고 연방직할영토로 편입했다. 이 조처는 잠무카슈미르주가 분쟁 중인 영토라고 규정한 유엔 결의안이나, 파키스탄 및 중국과의 양자 양해사항들을 어겼다.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카슈미르의 무슬림들이 들끓고 있다.
인도 지정학에서 제일 요충은 카슈미르 등 서북 변경 지대다. 현재 인도를 만든 아리안족의 침략부터 시작해 알렉산드로스, 티무르를 거쳐 마지막 왕조인 무굴제국까지 모두 이 지역을 거쳐 인도 대륙을 침공했다. 서북 변경 지역과 인도 안보는 동의어다. 중국이 국경분쟁을 격화시킨다면,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복귀하는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도 가세할 것이다.
1962년 국경분쟁 끝에 중국은 전격적으로 개전했고, 인도는 일방적으로 밀렸다. 다급했던 자와할랄 네루 당시 인도 총리는 존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구했다. 미국은 한국전쟁 뒤 9년 만에 다시 중국과의 분쟁에 엮여야 하는 부담에 주저하면서, 에이브럴 해리먼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파견했다. 해리먼이 도착하자, 중국은 일방적인 휴전과 함께 점령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당시 중국은 소련과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인도가 소련에 경사되고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를 받아주는 등 티베트 문제에 개입한다고 분노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 지역의 국경분쟁은 변경의 분쟁에 불과하나, 인도에는 핵심적인 안보 위기다. 최근 중-인 국경분쟁은 중국이 인도에 ‘서북 지역의 안보를 희생시키면서 인도·태평양이나 아시아판 나토에 참가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사실, ‘인도·태평양’이란 말은 인도 해군장교가 만든 말이다. 2000년대 이후 인도의 동방정책인 ‘룩 이스트’ 정책을 업그레이드한 ‘액트 이스트’(Act East)의 연계 차원이다. 인도와 믈라카해협 사이의 인도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미국과의 협력을 구하는 것이다. 미국이 의도하는 ‘반중국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인도·태평양 지역에 확산하는 것은 인도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인도 고위층의 인식을 미국 지정학자 월터 러셀 미드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전했다. 이른바 “얼버무리는 세력 균형책”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둔 미-인 관계는 “모두 말뿐이고, 보여주는 게 없다”는 워싱턴의 ‘인도 피로증’이 있다고 스팀슨센터의 남아시아국장인 사미르 랄와니는 지적했다.
결국 미국이 말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아시아판 나토는 기존의 동맹국들을 더 묶으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허깨비에 불과한 아시아판 나토에 한국이 앞장서야 한다는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