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집회시위를 막기 위해 전경버스로 장벽을 쌓는 이른바 ‘차벽’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다. “2003년 11월9일 민주노총의 시위에 화염병과 죽창 등이 동원되자, 경찰이 시위대를 막기 위해 도심 곳곳에 전경버스로 2중 장벽을 설치하고…”(위키백과) 전경버스 대신 컨테이너 장벽이 등장한 것은 2년 뒤인 2005년이다. 그해 11월 아펙(APEC) 부산회의 때 농민들이 쌀 개방 반대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2층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막았다.
컨테이너 장벽이 유명해진 것은 이른바 ‘명박산성’ 때문이다. 2008년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추진되자 경찰은 세종로에 컨테이너 박스를 2단으로 쌓았다. 컨테이너는 바닥에 철심으로 고정한 뒤 용접을 했다.
국민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기를 거부한 상징”이라고 조롱했다. ‘용접명박’ ‘컨테이너 정부’ ‘쥐박산성’ 등 수많은 신조어가 유행했다. 시엔엔(CNN), 뉴욕타임스, 비비시(BBC) 등의 언론 보도를 통해 세계적인 오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9년 6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정국 때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세워진 분향소와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에워쌌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6월 서울광장 차벽 봉쇄에 대해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며 위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도 ‘근혜장성’이 등장했다.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행사와, 11월 민중 총궐기 집회 때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까지 동원했다. 결국 농민 백남기씨가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경찰이 개천절인 지난 3일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광화문에 차벽을 세워 극우 보수단체의 집회를 원천봉쇄한 것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보수진영은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 과잉 대응이라며, ‘재인산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일부 진보진영도 박근혜 정부의 ‘불통’에 맞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지지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차벽을 세운 것을 비판한다. 반면 문 대통령은 “코로나 재확산이 없도록 철저히 대비했다”며 긍정 평가했다.
지난 20년의 역사는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를 막기 위해 차벽과 컨테이너 산성을 동원한 것은 어느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시위 이유는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정책, 쌀시장 개방 반대, 쇠고기 수입 반대, 노무현 대통령 사망, 세월호 참사 등 다양하다. 차벽과 컨테이너 산성의 첫 등장이 모두 노무현 정부 때인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개천절 집회 원천봉쇄는 코로나 방역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했다. 과거에는 없던 요소다. 앞서 광복절 집회는 코로나 재확산의 위험성을 실제로 보여줬다. 법원이 보수단체들의 집회 신청을 대부분 불허한 이유다. 경찰은 오는 9일 한글날 집회도 차벽을 설치해 원천봉쇄하겠다는 방침이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 한 집회·시위의 자유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역 노력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기본권과 방역 두가지는 모두 존중해야 할 가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면, 조화점을 찾는 게 우리 사회의 과제다.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 속에서 집회를 허용하되, 방역 조건을 어기는 행위는 엄벌하는 것도 대안이다.
곽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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