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팅팅 ㅣ 중국 베이징대 교수
북한 경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고강도 제재, 코로나19, 홍수 등 이른바 북한 경제의 ‘삼중고’에 대한 그간의 논의는 외부자의 분석과 추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북한 내부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듯하다. 내년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를 개최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기로 공식 발표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경제적 도전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자력갱생 노선 유지를 택했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차례 외부 지원을 거부했으며, 8차 당대회 소집 결정 이후에도 대외적으로 자세를 낮추거나 국경통제를 완화하지 않았다. 또 열병식 이후엔 ‘80일 전투’를 시작해, 전국적인 총동원을 통해 방역, 수해 복구와 경제 성과 극대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처는 북한의 정책적 전통, 비핵화 협상 전략, 세계 코로나 상황과 미국 대선 일정 등 대내외적 요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비교적 유연한 리더십 스타일과 민생경제를 중시하는 정책 이력을 고려할 때, 당면한 경제 난관을 자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북한이 삼중고 속에서도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저력은 무엇일까? 아래와 같은 사실이 북한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시장 물가와 환율 시세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쌀·휘발유 등 주요 상품 가격과 시장 환율을 보면,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4월엔 변동 폭이 확대됐다가, 이후 다시 안정 범위로 복귀했다. 북한의 시장 가격이 실제 수급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올해 초의 변동 폭을 보면 이들 가격 지표가 적어도 시장의 움직임을 상당히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둘째, 북한은 필요한 식자재 수입을 유지해 국내 먹거리 공급을 보충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북한의 무역 규모는 제재 이후 또 한번 대폭 축소됐지만 수출에 비해 수입의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특히 대두유·밀가루·사탕수수당 등 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식자재 수입은 지난 5월 무역 활동이 일부 재개된 이후 전년 대비 눈에 띄게 증가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수출입의 상대적 변화로 적자 폭이 더 커졌기 때문에, 관광 등 외화수입이 제한되는 국면에서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식량 문제가 정상적인 대외무역을 통해 일부 완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내 생산능력과 유통구조가 지난 십수년간의 시장화를 통해 많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특히 김정은 시기 이래 북한은 대내적으로 경제관리방법의 개선을, 대외적으로 국제무역 확대를 추진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의 생산설비를 정비하고 생산능률을 향상시켰고, 유통 경로의 다양화 및 활성화 측면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근년 제재의 강화에 맞춰 북한이 주력 수출입 제품을 조정하여 제재의 타격을 완충시키는 등 유연한 대응력을 보이는 것도 그 방증이다. 올해 들어 방역 때문에 경제 활동에 제동이 걸렸지만 ‘80일 전투’ 전개 과정에서 북한은 그동안의 방역 경험을 바탕으로 인적·물적 이동과 무역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북한은 악재가 겹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당장 위기까지 갈 수준은 아니고 자력으로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것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다만 어려움을 버텨내더라도 팬데믹과 제재의 장기화에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8차 당대회의 새로운 경제 발전 계획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중국과의 무역 회복·강화와 한국과의 협력 재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북한 경제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추진하는 데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