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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의미의 반사 / 김진해

등록 2020-11-08 18:32수정 2020-11-09 02:39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솔직히 의미는 ‘별것’이 아니다. 팔랑귀다. 시시때때로 변한다. 의미는 사전에 실린 뜻풀이가 아니다.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말과 세계 사이도 헐겁다. 그 사이를 사람들끼리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실천이 채운다. 그래서 의미는 가변적이고 사회적이다.

검찰 개혁에 비판 게시글을 쓴 검사에게 “이렇게 커밍아웃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고 한 장관의 말이 구설에 올랐다. 글쓰기 선생 눈에는 문장이 어색한 게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뭔 말이지?), 사람들에게는 ‘커밍아웃’이란 말이 문제였다. 이 말이 반복되어 쓰이자, 성소수자 단체와 진보정당에서 “커밍아웃이 갖는 본래의 뜻과 어긋날뿐더러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걸어온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의미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 소수자의 희생과 저항의 역사가 담긴 언어도 예외일 수 없다. 오용이나 퇴행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소수자들도 자신을 향한 혐오 발언을 낚아채서 그대로 돌려줌으로써 발언의 효과를 없앴다. 밥에 돌 씹히듯 들리겠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빼앗아 ‘(그럼) 이건 나라냐?’라고 되받아친다. 자신에게 유리한 의미를 퍼뜨리기 위해 열심히 투쟁 중이다.

벽에 박아놓은 못처럼 의미를 고정시켜놓을 수 없다. 멋대로라는 뜻도, 그냥 놔두라는 뜻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지식, 신념, 취향, 계급,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말은 이 모든 의미투쟁의 결과물이자 정치사회적 윤리의 문제와 닿아 있다. 의미는 팔랑귀지만 귀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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