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ㅣ 작가
‘늦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30대 중후반 이후 첫아이를 낳은 여성을 부르는 준말이다. 고령 산모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늦게 엄마가 되어서 드는 고민들을 모아주는 말이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체력 걱정부터 아이가 커가는 동안 잘 돌보기 위해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그냥 맘들과는 다른 늦맘들의 고민이다.
마흔에 첫아이를 낳은 지인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 이미 자신의 나이는 예순이 되니,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 생각 끝에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자신의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서 아이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할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이제 겨우 20대 비혼 남성인 내가 늦맘의 불안을 이해했다고 하면 분수 넘친 생각일까? 하지만 나는 그 불안과 맞닿는 고민을 한다. 바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의 문제다.
요즘 나는 나처럼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들을 인터뷰해서 연재하기도 하고, 직접 만나면서 느낀 문제의식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족을 돌보는 일과 진로를 이행하는 일은 자주 충돌한다. 가족을 돌보게 되면 자신이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할 수 없고, 직장을 다니며 저축해둔 돈을 가족의 병원비나 생계비로 쓰는 경우도 흔하다. 나는 나를 포함해 이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 부르며 사회적으로 드러내려고 노력 중이다.
영 케어러는 만성 질환, 정신 질환, 장애, 알코올이나 약물 의존 등을 겪는 가족을 돌보는 만 18살 미만 또는 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아직 한국에서는 익숙하게 쓰이는 말이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 배경에는 고령화, 저출생, 만혼화라는 인구 변화가 있다. 그런 인구 변화 속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면 이미 부모는 중년, 조부모는 노년에 이르러 있다. 거기에 외동일 가능성도 높다. 일본의 1인가구를 연구하는 후지모리 가쓰히코는 ‘싱글 개호(돌봄) 예비군’이 생기는 요인으로 저출생으로 아이의 형제자매 수가 줄어들면서 부모의 돌봄을 혼자 맡아야 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일본에서 영 케어러에 주목하는 맥락은 꼭 늦맘의 불안과 맞닿는다. 늦맘이 느끼는 불안이 원하지 않은 형태로 현실이 된 게 바로 영 케어러일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면, 아이는 여지없이 영 케어러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의 청년 문제도 돌봄 문제의 전조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회에 나오는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생애 이행이 늦춰지면, 그만큼 청년들이 자신의 일의 숙련과 경력을 쌓거나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시기도 뒤로 밀린다. 문제는 부모가 돌봄이 필요한 시기도 같이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직업적 안정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럼 생애주기상 완수해야 하는 과제들이 완전히 꼬여버리는 셈이다.
앞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더 다양한 돌봄 상황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출산, 육아, 간병 등 돌봄을 일정한 생애주기에 행하는 과업쯤으로 여겼다. 그래서 일정한 생애주기를 벗어난 ‘늦’맘이나 ‘영’ 케어러의 존재는 예외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구 변화 속에서 수많은 예외 상태들이 보편적인 삶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돌봄 상황을 예외로 두지 않으려면, 우리는 돌봄이 모든 시민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늦’거나 ‘영’한 돌봄이 아닌 온전히 삶과 함께하는 돌봄이 가능하다. 모두에게 돌봄받을 ‘권리’와 돌봄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질 때, 어떤 돌봄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