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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더 커진 ‘수도권 표차’, 내년 봄 보궐선거도 그럴까

등록 2020-11-30 16:37수정 2020-12-01 02:39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11
올해 4월 21대 총선 때 유세장에 모인 시민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121석 중 103석을 휩쓸었고 이것이 역대급 승리의 밑바탕이 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올해 4월 21대 총선 때 유세장에 모인 시민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121석 중 103석을 휩쓸었고 이것이 역대급 승리의 밑바탕이 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수도권은 지역 표심의 영향을 받아 여야가 엇비슷하거나 정치 상황에 따라 진보·보수를 넘나드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았다. 지금까지 대선 레이스에서 ‘영남 후보’ ‘호남 후보’ ‘충청 후보’란 말은 있어도 ‘수도권 후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수도권이 다른 지역의 영향 없이 특정 정치세력에 분명한 지지를 보낸다면, 대선에서 수도권 출신 정치인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게 가능해진다.

민주노총 대변인을 지낸 손낙구(현 국회의원 보좌관)씨가 2010년 펴낸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엔 ‘동네가 보인다, 선거가 보인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1186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학력과 종교, 거주형태, 투표성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 책을 보면, 2002~2008년 치른 네 차례 선거에서 수도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나타나 있다. 두 차례의 지방선거(2002, 2006년)와 두차례 총선(2004, 2008년)에서 서울 사람들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평균 46% 지지를 보냈고, 민주당(+열린우리당)엔 36%의 지지를 보냈다. 네 차례 선거에서 진보정당(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평균 득표율은 9%다. 전체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평균 득표율은 46% 대 45%로 비슷하다. 반면 경기도의 네 차례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평균 47%를, 민주당(+열린우리당)은 평균 34%를 득표했다. 진보정당 평균 득표율이 10%이니, 보수와 진보 득표율은 47% 대 44%로 3%포인트 차이가 난다. 3%포인트는 지역구 선거를 치르는 국회의원이나 기초단체장에겐 작지 않은 규모의 격차다. 이런 수치는 ‘서울은 민주당(+진보정당) 우세, 경기는 한나라당 우세’라는 전통적인 수도권 정치지형에 얼추 들어맞는다. 수도권은 가장 많은 의석이 걸린 최대 승부처이면서, 여야가 접전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이후 수도권의 기류는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올해 4월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얻은 의석은 전체 121석의 80%를 넘는 103석이었다. 국민의힘은 16석에 그쳤다. 물론 이건 민주당이 역대급 압승을 거둔 결과일 뿐이며, 이 추세가 다음 선거에도 이어지리라 보긴 힘들다. 다만,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있다. 최근 몇년간 전국선거에서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수도권 득표를 강화해왔다는 점이다. 과거 ‘야도’(野都)라 불린 서울은 그렇다 쳐도 보수정당 우세가 뚜렷했던 경기도가 민주당 지지로 변화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수도권이 하나의 ‘지역’이 됐다는 평가는 이래서 나온다.

과거 선거에서 ‘지역’이란 영남 호남 충청을 의미했다. 수도권은 ‘지역’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영호남과 충청은 주요 정당의 정치적 기반으로 간주됐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김종필의 자민련이 충청권 28석 중 24석을 석권한 건 ‘지역주의’ 외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에 수도권은 여야가 엇비슷하거나 정치 상황에 따라 진보·보수를 넘나드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았다. 지금까지 대선 레이스에서 ‘영남 후보’ ‘호남 후보’ ‘충청 후보’란 말은 있어도 ‘수도권 후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수도권이 다른 지역의 영향 없이 특정 정치세력에 분명한 지지를 보낸다면, 대선에서 수도권 출신 정치인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게 가능해진다.

최근 일련의 선거, 특히 올해 4월 총선 결과는 수도권이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를 넘어서고 있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수도권 유권자 수는 서울(847만명), 경기(1106만명), 인천(250만명)을 합쳐서 2200여만명에 이른다. 전체 유권자(4397만명)의 절반이다. 2012년 19대 총선 이래 일곱 차례의 전국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모두 승리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서도, 수도권은 문재인 후보가 간발의 차로 앞섰다. 그 이후 수도권은 ‘스윙 스테이트’가 아니라 ‘지역색 없는 지역’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수치로 확인해보자.( 참조) 2012년 4월의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서 총 493만여표(46.6%, 지역구 기준)를 얻어 479만여표(45.3%)를 얻은 새누리당을 14만여표 차로 이겼다. 지지율 격차는 1.3%포인트에 불과했다. 의석수는 민주당 65석, 새누리당 43석으로 20여석 차이가 났다. 그해 12월의 18대 대선에선, 앞서 얘기한 대로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만은 문재인 후보(746만3936표, 49.8%)가 박근혜 후보(740만6087표, 49.4%)를 약 5만7800표 앞섰다.

박빙이던 표차는 2014년 지방선거 때부터 좀더 벌어진다.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서울·경기·인천 지방선거에서 580여만표(51.2%)를 얻어 523만여표(46.1%)에 그친 새누리당을 눌렀다. 지지율로는 5%포인트, 표수로는 56만5천여표 차이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42%를 득표해 37.7%에 그친 새누리당을 4.3%포인트(50만5천여표) 차로 이겼다. 의석은 민주당 82석, 새누리당 35석으로 4년 전에 비해 격차가 벌어졌다. 2017년 5월의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수도권에서만 300만표 이상 차이로 이겼다. 이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것이라 ‘300만표 차’가 정상적인 격차라고 보긴 어렵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675만여표(54.2%, 광역단체장 기준)를 얻어 야당인 자유한국당(375만표, 30.1%)을 크게 앞섰다. 다만 또 다른 보수 야당인 바른미래당이 131만여표(10.5%)를 얻었기에, 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수도권 표차는 169만여표가 됐다. 이 수치는 올해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얻은 수도권 표의 격차와 거의 비슷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770여만표(45%)를 얻었다. 592만여표(34.5%)를 받은 미래통합당을 178만여표 차로 이겼다. 의석 격차는 민주당 103석, 통합당 16석으로 더 커졌다. 2012년부터 살펴보면, 19대 대선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국민의힘 수도권 득표 격차는 10만표에서 50만표, 그리고 170만표 안팎으로 점점 벌어진 걸 알 수 있다.

수도권의 이런 흐름은 우리 사회의 세대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가 진보를 추월하는 나이’가 2012년 47살에서 2019년 57살로 높아졌다는 건, 최대 인구 밀집지역인 수도권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과거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했던 경기도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데엔 이런 세대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올해 4월 총선에서 당선된 민병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안양 동안갑)은 2000년대 중반 서울에서 현 지역구인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엔 변호사로 서울에서 전세를 살았는데, 집값 상승을 이기지 못하고 강남에서 비교적 가까운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민병덕 의원은 “경기도 선거 결과를 보면,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일수록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서울 집값 상승에 따른 30, 40대의 수도권 이전과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신도시 개발이 경기도 정치지형의 변화에 일정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예전엔 영호남 표심이 수도권의 영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선거에서 지역감정이 태동한 건 1960년대 말~70년대 초의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이제 두 세대 가까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표심은 더이상 수도권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올해 4월의 총선 결과는 상징적 사례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미래통합당 참패 예상이 고개를 들면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선 보수표가 결집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서울 강남을 제외하고는 수도권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영호남 또는 충청권 표심이 수도권과 연결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유권자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의 ‘지역화’는 야당인 국민의힘엔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수도권 득표율에서 5%포인트 격차만 나도, 전체 표수에선 100만표 안팎의 차이가 난다. 대통령선거 같은 전국 단일 선거에서 보수 야당이 아무리 영남을 석권해도 이 격차를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4월 총선에서 거의 모든 보수 정치세력(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미래통합당 지지 의사를 밝혔다)을 결집했는데도 역대급 참패를 당한 건, 더이상 ‘보수의 통합’만으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이런 변화가 깔려 있다.

수도권과 영남 지지를 받는 ‘전국정당’은 김대중·노무현 두 진보 대통령의 오랜 꿈이었다. 두 대통령이 예상했던 경로는 아니지만 어느새 민주당은 전국정당이 됐다. 명분이 약한데도 내년 4월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를 내기로 한 데엔 이런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4월 총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수도권의 정치지형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내년 봄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 결과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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