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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지라시’도 가끔은 진실을 말한다 / 신승근

등록 2020-11-30 18:31수정 2020-11-30 18:59

‘어지름, 흩뜨려 뿌림’이라는 뜻의 일본어 지라시, 일본에선 광고를 위해 배포하는 인쇄물, 전단지를 일컫는 데 쓴다. 의미도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잘게 썬 생선, 달걀 지단, 양념, 채소, 날치알 등을 흩뿌린 일본의 대표적 가정식 덮밥은 ‘지라시스시’다.

<문화방송> 표준 에프엠 인기 프로인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청취자들은 ‘지라시’라고 부른다. 정겹게 들린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라시는 대부분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믿거나 말거나,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담은 ‘삼류 정보지’를 칭한다. 연예인, 재벌가의 연애, 추문이 주요 소재로 대중들에게 급속히 퍼져 심심풀이처럼 소비된다. 스타급 배우들이 지라시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지난해 방송가에 떠도는 얘기라며 한 유명 배우와 피디의 불륜설을 지라시로 만든 방송 작가와 이를 인터넷 카페에 퍼뜨린 이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무려 넉 달 동안 수사해 최초 유포자를 밝혀낸 드문 사례다.

증권가에 유통되는 정보지도 통칭 지라시로 불린다. 정치·경제·사회 등 한국 사회 각 부문의 내밀한 정보를 그럴듯하게 정리해 전한다. 정보 출처, 제작 및 배포 주체를 두고 억측만 무성하다. 기자, 정보기관원, 대기업 홍보전문가 등이 팀을 이뤄 만든다, 돈 받고 빼돌린 내부 정보를 짜깁기한다는 얘기들이 나돌지만 이 역시 지라시 같은 분석일 뿐이라 그 전모를 알기는 어렵다.

정치권에선 불리한 정보가 세상에 유통될 때 지라시로 격하하며 신빙성을 떨어뜨리곤 한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를 통해 ‘정윤회씨가 서울 강남 모처에서 소위 ‘십상시’ 멤버들과 만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청와대 내부 상황 등을 체크하고 의견을 냈다’는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 문건이 보도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행동이 대표적이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을 지적한 이 문건에는 ‘이 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극치의 말이 오가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박 대통령은 “악의적 중상이 있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2년 뒤, 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 그는 탄핵당했다. 지라시가 아닌 진실이었다. 당시 여권에선 “지라시로 비하할 게 아니라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바로 잡았어야 한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국회 출석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던 지난 11월 26일,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그 양반이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 나온 것 같아서 유감스럽다’고 말한 걸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조 의원이 자신과 면담에서 한 얘기를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조 의원이 몸담았던 <동아일보>를 무시한 발언으로 확전하며 이 신문사에서 일했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윤영찬 민주당 의원까지 끌고 들어가 “이들이 ‘지라시’ 출신인지, 신문 매체 자체가 지라시라는 것인지 밝히라”고 맞섰다. 지라시에 나옴 직한 얘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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