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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국가 사전 폐기론 / 김진해

등록 2020-12-06 15:17수정 2020-12-07 02:39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국가 사전’: 민간이 아닌 정부가 펴낸 사전.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말함(비슷한말: 관변 사전, 관제 사전).

사전 뒤에는 사전 만든 사람이 몰래 숨어 있다. 중립적 사전은 없다. 사전 편찬자의 권한은 막강하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배제할지,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결정한다. 그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하다.

국가 사전을 없애자고 하면, 사전 출판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거나 말글살이에 대혼란이 올 거라고 겁을 낸다. 기왕 만들어 놓은 걸 왜 없애냐고 한다.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교체할 만큼 사회적 역량을 갖춘 한국 사회는 유독 사전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명령의 집합체이자 일방적 힘을 행사하는 장치이다. 국가 사전은 그 자체로 명령과 통제의 언어이다. ‘다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표준사전>만 검색한다.

사전은 언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철학과 기준들로 서로 경합해야 한다. ‘복수’의 사전이 계속 나와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 예술 정책의 기조는 사전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야 한다. 사전을 낼 만한 역량을 갖춘 출판사나 대학, 전문가 집단 몇 곳에 10년짜리 예산 지원을 해보라. 창고에 묵혀 두었던 사전 원고를 다시 꺼내고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들을 찾아나서 각자의 색깔과 향기에 맞는 사전을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일본어 사전 못지않은 사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 사전을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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