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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집의 역습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0-12-08 17:40수정 2020-12-09 02:38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지금 우리나라에서 집은 ‘삶의 휴식을 주는 곳’, ‘가족의 추억을 쌓는 곳’ 등등 본래의 가치 위에 ‘재산의 증식 수단’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얹었다. 예전에도 집이란 중요한 재산목록 중 하나였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 마치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는 괴수처럼, 길들이려고 들어가지만 번번이 많은 상처와 희생만 생긴다. 문제는 그 괴수가 사실 몇십년 동안 공들여 키우며 자라는 모습을 대견하게 지켜보던 모두의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가 있다. 누구나 잘 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이다. 멜빵바지 작업복을 입은 찰리 채플린이 동료와 나란히 서서 두 손에 스패너를 들고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이동하는 제품의 나사를 조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흔히 ‘포드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그 이전 시대와 구분되는 자동화된 생산수단이 대량생산과 그로 인해 생기는 현대의 부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일단 그 대열에 들어서면 이탈할 수 없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벨트의 속도에 맞춰서 손을 놀려야 하고, 잠시의 휴식은 대오의 이탈을 야기하고 시스템의 붕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발을 뺄 수 없다. 그리고 어느새 인간은 소외된다.

세기 전 영화인데도 지금의 현실과 흡사하다. 우리는 그런 생산라인에 들어선 것처럼 ‘집값’이라는 벨트에 들어섰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정부에서는 주택 정책을 내놓으며 집값을 잡겠다고 하다가 심지어 이미 집값이 안정되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은 계속 오르고, 더 오르기 전에 사겠다는 조바심을 부채질한다.

이건 승자 없이 모두 패하는 이상한 게임이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그만큼의 부가 축적되지 않는다. 오른 값으로 집을 처분하고 다른 집을 사려니, 내 집만 오른 게 아니라서 선택의 범위는 좁다. 실거래가 반영으로 보유세가 오르고, 거래 증가로 양도세와 취득세가 늘고, 다주택자들은 파느니 물려준다며 증여세를 내고…. 집이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점점 세금을 많이 걷게 되는 정부만 이기는 게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결국 우리는 집의 가치를 이상하게 변질시킨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그 벨트에서 발을 빼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의 바탕에는 사람들이 떨치지 못하는 불안과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그것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해결이 요원하다. 정부가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핑계를 찾는 걸 그만두고 사람들에게 신뢰를 찾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단번에 이 현상을 수습하겠다거나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보다, 사람들의 불안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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