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이 8일 낮 차량을 타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주차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쌍방의 절차법적 수싸움이 요란한 사이, 징계 사유 자체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상대적으로 묻혔다. 한편에선 윤 총장 징계가 검찰개혁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물음도 나온다. 함께 생각해볼 문제다.
언론사주 만남 검사윤리강령은 ‘검사는 사건 관계인 기타 직무와 이해관계가 있는 자와 정당한 이유 없이 사적으로 접촉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사건 관계자인 언론사 사주를 주점에서 만났다면 당연히 강령 위반이다.(언론사주가 어떤 사건의 이해관계자였는지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명확히 밝혔어야 한다.) 검찰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강령이 검찰 지도부에서부터 엄격히 적용되지 않는다면 조직 전체에 어떤 신호로 작용할까.
현직 검사들이 룸살롱에서 수백만원어치 접대를 받은 게 사실로 확인돼 8일 검사 한명이 기소됐다. 검사 향응·스폰서 논란은 지겹도록 반복돼왔다. 윤리강령이 좋은 말을 적어놓은 종잇조각에 그친다면, 이런 일은 언제까지고 되풀이될 것이다. 검찰개혁은 검찰 행위 준칙의 확립이라는 기초적인 지점에서 시작된다.
‘법관 사찰’ 의혹 문건 7일 법관대표회의는 이 사안에 의견을 내놓지 않기로 했지만, 이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려는 것이지 문건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윤 총장 쪽은 판사 관련 정보를 담은 미국·일본의 책자를 제시하며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책자는 검찰이 아니라 민간에서 만든 것이다. 사찰은 민간이 아닌 국가기관이 정보수집을 하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이다.
이 문건은 특정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도 드러낸다.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자기들이 직접 수사한 사건은 무죄가 나오지 않게 판사의 성향을 이용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유죄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태도가 공정한 검사의 태도냐”고 지적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객관 의무’를 지는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수사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질 리 없다.
얼마 전 검찰 수사를 받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비서실 부실장이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근 1년 사이 4번째다. 검찰이 직접 수사의 주체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객관적 시각에서 기소와 공소 유지를 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이런 비극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수사·기소권 분리라는 검찰개혁의 대원칙을 상기하게 된다.
감찰 방해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이런 징계 사유도 있다. 지난 5월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 강압·조작수사였다는 의혹이 일자 대검 감찰부가 감찰에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윤 총장이 이를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로 넘기도록 지시했고, 감찰부장이 이의를 제기하자 대검 차장이 ‘참고만 할 수 있도록 (감찰) 민원 사본을 달라’고 한 뒤 마치 원본인 것처럼 ‘대검 민원 이첩’이라고 적어 서울중앙지검에 보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며칠 전 구속됐다. 감찰·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공적인 문서에 손을 댄 것은 두 사안이 유사하다. 어느 쪽은 구속이고 어느 쪽은 징계조차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검찰 안과 밖에 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는 것은 검찰개혁의 오랜 어젠다다.
정치적 언행 윤 총장은 검찰에 정치적 색깔을 입히는 치명적 과오를 범했다. 정계 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을 함으로써 검찰총장이라는 직위가 본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낳았다.
‘법관 사찰’ 의혹에 입을 닫은 법관대표회의의 태도는 문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정치적 중립에 흠잡혀선 안 된다는 사법부의 원칙주의로 비치기도 한다. 말로는 법원에 버금가는 준사법기관이라고 하면서 ‘검찰당’이란 말이 공공연히 통용되는 상황을 만든 검찰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윤 총장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윤 총장 징계 사유들은 과도한 권한의 무소불위 행사, 견제장치의 부재, 정치적 편향 등 검찰개혁이 필요한 지점들과 맞닿아 있고, 사실이라면 재발을 용인할 수 없는 일들이다. 징계 수위를 떠나, 반드시 짚고 법적·사회적 평가를 내려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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