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 1977년 분양한 서울 반포주공 아파트 2, 3단지엔 한동안 이런 괴상한 이름이 붙어 다녔다. 주택청약제도를 처음 도입한 정부가 정관수술 등 불임 시술자에 대한 우대 조항을 넣은 탓이다. 입지 여건이 좋아 3810가구를 분양한 이 단지는 청약 과열 양상을 보였는데, ‘해외취업자로 불임 시술자’ ‘불임 시술자’, ‘해외취업자’ 순으로 당첨 우선권을 줬다. 주택부금에 가입했어도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으로 권장한 불임시술을 받지 않고는 당첨권에 들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기준은 이후 강서구 화곡지구 시범아파트 등으로 확산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부담을 느낀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한 가족 두 자녀’ 정책을 시행했다. ‘삼천리는 초만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산아 제한 포스터가 골목마다 나붙었다. 두 자녀 이하 가정엔 근로보상금을 지급하고, 셋째부터는 아예 가족수당도 주지 않았다. 보건소에선 피임약과 콘돔을 배포했고, 남성에겐 정관수술을 적극 권장했다. 1974년부터 예비군 훈련장에서 무료 정관시술을 시행했고, 훈련 면제 등 혜택도 늘려갔다.
1980년대까지 지속한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은 효과를 발휘했다. 출산율은 떨어졌고, 1990년대엔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했다. 정부는 1996년 출산 장려로 정책 목표를 전환했다. ‘아이가 미래입니다’ ‘허전한 한 자녀, 흐뭇한 두 자녀, 든든한 세 자녀’ 등 새 표어가 등장했다. 그런데도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살)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2002년에 1.30명 이하로 떨어져 초저출산율 시대가 도래했다.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2005년 테스크포스팀을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처음 시행됐고, ‘3자녀 이상 다자녀 특별공급’ 등 자녀가 많은 가구에 주택 당첨 우선권을 주는 제도도 도입됐다. 30년 만의 반전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225조원의 예산을 출산 장려 정책에 편성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로 처음 1명 이하로 떨어졌고, 2019년 0.92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더 낮아진 0.8명대로 예측된다. 세계에서 가장 낮다. 통계청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인구 동향’을 보면, 올해 1~9월까지 출생아는 21만1768명, 같은 기간 사망자는 22만6009명이다. 인구 자연증가는 마이너스 1만4241명, 이 추세라면 올해는 인구가 처음 감소하는 ‘인구 절벽’ 첫해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생후 24개월 이전 영아에 대한 수당 지급’, ‘다자녀 주거 지원 기준 2명으로 완화’ 등 대책을 추가로 내놨다. 효과는 미지수다. 아무리 낳으라 한들,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애를 낳아 기르겠냐는 아우성은 커진다.
신승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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