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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트럼프와 한국 검찰의 ‘연성 쿠데타’

등록 2020-12-21 20:27수정 2020-12-22 02:42

국가 형벌권에 대한 권한을 자의적이고 과도하게 행사하는 집단의 행태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연성 쿠데타’로 귀결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트위터에 자신의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시위 장면 영상을 공유했다. 시위애듸 맨 앞줄 왼쪽에 민경욱 전 국민의힘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화면 캡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트위터에 자신의 지지자들의 대선 불복 시위 장면 영상을 공유했다. 시위애듸 맨 앞줄 왼쪽에 민경욱 전 국민의힘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화면 캡처

정의길 ㅣ 국제부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벌이는 ‘대선 불복 운동’은 결코 끝나지 않는 게임이 될 것 같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연성 쿠데타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이 조작됐고 자신은 패배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지지층은 이런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에 투표한 유권자의 약 40%가 “투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전체 유권자의 20% 정도다. 결국 트럼프는 전체 유권자의 20%를 자신의 강고한 지지층으로 만들고 있다.

현 상태로라면,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트럼프에 대적할 인물은 없다. 트럼프가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선 불복을 이어가는 것은 이런 열성 지지층 때문이다. 그는 이런 지지층을 배경으로 미국의 선거 등 민주주의 제도의 가치와 작동 기제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하려는 각종 소송은 그 일환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말하는 대로, 트럼프로서는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법적 권한이 있다.

민주주의는 여기서 맹점이 발견된다. 법이 보장한 권리가 정의 실현을 언제나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로 투표 당일 이후에 도착하는 우편투표를 무효로 처리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대선 결과는 뒤바뀔 수 있다. 사실 우편투표를 무효화하는 판결 논리를 만드는 것은, 법관으로서는 풍성한 반찬을 가지고 비빔밥 만들기만큼이나 쉽다.

만약 차기 대선에서 선거의 풍향이 공화당 쪽으로 유리하게 분다면, 트럼프가 제기하는 선거 조작 주장은 더욱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유권자의 참정권을 확대하려는 우편투표의 운명이 어찌 될지도 알 수 없다. 2000년 미국 대선의 플로리다 개표 분쟁은 이를 희미하게 보여줬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플로리다의 4개 카운티 재검표를 요구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요청을 물리쳐서, 결국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기존 개표 결과가 인정됐다. 주권 행사를 법관이 재량할 수 있냐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5 대 4로 부시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는 정확히 대법관들의 보수 대 진보 비율과 일치했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벌이는 대선 불복은 합법적이다. 그들이 연 집회에서는 총으로 무장한 백인 민병대원들이 모여서 위력을 과시한다. 그것 역시 합법이다. 하지만 이런 합법들은 일련의 절차와 과정을 통과해서 완성되는 민주주의 작동 기제를 분절화시켜, 그 단위마다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낼 공산이 크다. 이들의 이런 합법적 시도는 차기 선거에서 참정권을 축소해서 민의의 반영을 왜곡할 공산이 크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연성 쿠데타이다. 일시적인 무력행사를 통해 단기간에 정권을 전복하는 전형적인 쿠데타와는 다르다. 우리는 이런 ‘연성 쿠데타’를 이미 목격했다.

이집트 사상 최초의 민선정부인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정부는 법원과 검찰의 협공 속에서 고사하다가, 결국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 법원은 무르시 취임 이틀 전에 무르시의 자유정의당이 다수당이 된 의회선거 결과를 무효로 만들며 무르시 정부 무력화에 나섰다. 의회 재소집, 헌법 제정을 위한 헌법회의, 새로운 총선 실시 등을 모두 법원이 막았다. 검찰은 무바라크 독재정권 하야의 계기가 된 시위대를 죽인 폭도들의 무죄를 사주했다. 이에 격노한 무르시가 검찰총장을 해임하자, 검찰은 불복했다.

트럼프 세력과 이집트 ‘법치’ 세력들의 모습은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보여준 한국 검찰의 행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관 청문회 직전에 그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펼치고, 거의 사돈의 팔촌까지 털어서 별건 혐의를 찾았다. 검찰개혁을 초래하게 된 검찰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마디 반성의 목소리가 없고, 검찰개혁은 검찰 독립성을 해친다는 집단적 목소리만 들린다. 급기야, 검찰 수장이 자신의 직위를 놓고 행정소송을 내면서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서슴없이 연출한다. 이 모두가 검찰의 합법적 권한이기는 하다. 또한, 트럼프 세력과 이집트 ‘법치 세력’들이 보여준 자의적이고 과도한 법적 권한과 수단의 행사이기도 하다.

국가 형벌권에 대한 권한을 자의적이고 과도하게 행사하는 집단의 행태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연성 쿠데타로 귀결될 것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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