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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경계가 없는 / 노은주·임형남

등록 2020-12-22 17:46수정 2020-12-23 02:42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충남 금산 어느 언덕에 박공지붕으로 된 소박한 집을 지은 적이 있다. 언론 매체를 통해 그 집의 사진이 소개되자, 댓글 중에 집 모양이 ‘일본식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일본식, 즉 왜색이라는 평가는 주홍글씨 같은 것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당혹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혹감보다는 왜 그렇게 보이는지, 궁금증이 더 컸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집은 우리의 살림집을 지금 가장 보편적인 목구조라는 현대의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자연의 풍경이 담기고 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지나가는 공간을 의도한 것이다. 그러나 재료의 한계로 지붕의 선이 직선이 되고 서까래도 각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일본식으로 보인 것은 기와를 올리고 용마루를 잡아가는 한옥의 곡선이 없었기 때문일까.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의 것일까?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는 같은 문화권이고 오랜 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가 섞이기도 해서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럴 때는 가서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고, 몇년 동안 두 나라를 들락거리면서 그 차이점을 찾아보았다. 비슷한 듯 다른 여러가지 문화적인 차이와 자연을 대하는 방식, 미묘한 지붕의 곡선, 그리고 문이나 창의 문양의 차이 등 구별되는 특징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띈 것은 공간의 경계에 관한 것이었다. 두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공간의 경계가 약간 모호하며 서로 넘나든다. 정원을 예로 들어보면,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고 명확하다. “여기까지는 정원이고 여기까지는 사람이 앉아서 감상하는 곳.” 그런 식이다. 경계뿐 아니라 각 공간의 프로그램도 아주 정확하다. 그에 비해 우리의 정원은 그 경계가 마치 손으로 선을 뭉개놓은 것처럼 아주 흐릿하다. 심지어 그곳이 정원인지 그냥 풀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풀밭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마치 자연의 일부가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졌다.

그런 특징은 조경뿐 아니라 건축 공예 등 다방면의 밑바탕에 확고하게 깔려 있었다. 가령 판소리 마당이나 춤을 추는 공연의 무대와 객석 또한 경계가 없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감상하는 관객이 같이 흘러간다. 얼쑤 하면서 추임새를 넣어주고 박장대소 호응해주며 같이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간다. 최근 여러 방면에서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세계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경계 없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에 공감하고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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