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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20대 동생과 아버지의 ‘노동 불가 시대’

등록 2021-01-03 11:41수정 2021-01-04 02:08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조기현 ㅣ 작가

동생에게 돈 빌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흔한 일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남았고, 동생은 어머니를 따랐다. 가구가 분리됐다고 아예 교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분리된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분리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내가 홀로 아버지를 돌보게 된 것이다. 나와 동생 사이에는 경제적으로 더는 부담이 되어선 안 된다는 무언의 규칙이 있었던 셈이다. 10년 넘게 유지되던 규칙이 깨졌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가 휩쓴 지난 1년간 동생의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아르바이트 구인 앱을 켠다. 지역, 근무요일, 근무시간을 설정한 후 검색한다. 기왕이면 집에서 멀지 않았으면 좋겠고, 평일 내내 일하기를 선호하며, 밤늦게 하는 일은 피하고 싶다. ‘새로고침’을 하면서 바로바로 올라오는 구인 게시물을 본다. 2~3명 뽑는 구인 게시물에 일순간 100~200명이 달려드는 요즘이다. 앱은 함께 구인 게시물을 보고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지 친절하게 띄워준다. 일일 알바조차도 몇백명이 보고 있으니 지원해도 안 될 거라고 미리 고지받은 기분이다. 매일 하루 몇십 개씩 지원서를 내면 한달에 여남은 개의 단기 알바는 할 수 있다. 그렇게 한해 동안 생계비나 주거비를 메꿨다.

동생은 고졸 신분으로 몇년간 단기 알바, 공공일자리, 몇개월짜리 계약직을 오가며 20대의 대부분을 버텼다. 그사이 여러번 직업 훈련을 받고 자격증을 따보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요즘은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걸 딴다고 일을 구할 수 있는지, 미래에 그 일은 일로 존재할 수 있는지 확실치는 않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해보는 것에 가깝다. 내가 팔 걷고 나선다고 일자리가 뿅 생기는 것도 아니니, 나는 말없이 지갑을 열어 생활비를 보탠다.

동생 연락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일로도 연락이 왔다. 주민센터였다. 아버지의 ‘근로능력평가’ 재심사 기간이라는 알림이었다. 아버지는 1년 주기로 근로능력을 평가받는 기초생활수급권자다. 나는 아버지가 입원한 요양병원에서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떼서 주민센터에 제출한다. 아버지에게 치매가 있다는 진단서는 아버지의 근로능력을 심사하는 근거가 된다. 국가는 그 심사를 통해 생계비와 의료비 보장을 연장할지 말지 결정한다.

동생의 근황과 아버지의 심사를 연달아 겪으니 참 기이했다. 노동 능력이 있어도 노동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근로능력평가라니! 이제 단기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freeter)로도 생존이 어려운 시기다. 거기에 오늘날 전통적인 노동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내가 하던 노동이 에이아이(AI)로 대체된다든가,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닌 분절된 일거리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든가, 하는 말들은 이미 현실이자 더 가속화될 미래일 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말은 자본이 원하는 미래를 투영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의 미래는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껏 우리는 복지를 노동하는 자에게 먼저 주어지는 권리라고 여겼다. 이를테면 일하는 사람에게 근로장려금을 지급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하고 싶어도 노동할 수 없는 시대다. 신체의 질병이나 장애 정도로 근로능력을 따져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변하는 세상과 동떨어진 구시대의 패착 같아 보인다. ‘사지 멀쩡한 놈한테 왜 국가가 지원해야 하냐’는 관념의 실체가 ‘근로능력평가’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새해는 이런 관념을 버리면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일상이 권리와 노동과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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