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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미국인 4명 중 1명은 ‘의회 난입자’라는 현실

등록 2021-01-11 17:00수정 2021-01-12 02:44

미국 유권자 4명 중 2명이 잠재적인 ‘의회 난입자’가 되면 어찌될까? 트럼프가 법원과 의회에 제기한 선거 결과 번복 시도는 지금처럼 기각될 수 있을까? 정치적인 문제들을 검찰과 법원으로 가져가는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안녕하지 않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뿔이 달린 털 모자를 쓴 채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연방 의사당에 난입해 주목을 끈 제이크 앤절리(가운데). 그는 음모론 신봉 집단 ‘큐어넌’의 열혈 추종자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온 몸에 문신을 하고 뿔이 달린 털 모자를 쓴 채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연방 의사당에 난입해 주목을 끈 제이크 앤절리(가운데). 그는 음모론 신봉 집단 ‘큐어넌’의 열혈 추종자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정의길 ㅣ 국제부 선임기자

지난 6일 미국 의사당에 난입한 이들은 관광객처럼 인증샷을 찍고, 그 사진들을 공개했다. 자신들이 처벌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만도 하다.

의회에 난입한 이들은 미국에서 결코 ‘별종’들이 아니다. ‘유고브’ 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의 45%는 이들의 의회 난입을 지지한다. 58%는 이 사태가 평화적이었다고 답했다.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이들은 27%에 불과했다.

미 대선이 끝난지 열흘 뒤인 11월13일에 실시된 로이터·입소스 조사를 보면, 공화당원의 68%가 선거가 조작됐다고 답했고 52%는 트럼프가 ‘정당하게’ 승리했다고 믿는다. 그 한달 뒤인 12월10일 발표된 퀴니피액대학교의 관련 조사에서 이 수치는 더 증가했다. 공화당 유권자의 77%는 대선에서 만연한 사기가 있었다고 믿는다. 트럼프 지지율은 44%로, 이 조사에서 최고치인 지난 4월의 45%에 근접했다.

이런 조사를 보면, 미국 유권자 4명 중 1명, 혹은 적어도 20%는 잠재적인 ‘의회 난입자’이다. 미국 사회에 내재해 왔던 불편한 이념과 정서를 감안하면, 20%는 충분히 가능하다.

트럼프주의는 반낙태와 반엘지비티(LGBT, 성소수자)로 드러나는 사회적 보수주의, 감세와 규제완화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정글 자본주의),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는 경제적 민족주의, 기존 주민과 그 문화를 절대시하는 토착주의(내이티비즘), 쿠클럭스클랜(KKK) 등으로 대표되는 인종주의인 백인 민족주의로 구성된 “모순적이고 불안정한 혼합물”이다.(제프 굿윈 뉴욕대 교수) 여기에 복음주의라는 기독교 근본주의도 더해야 한다. 이 6가지 이데올로기들은 미국 사회가 어려워지면 극성을 부리다가, 넉넉해지면 잠재되곤 했다. 특히 그 어느 정치인들도 감히 이를 자신의 의제로 전면화시키지 못했는데, 트럼프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의회 난입 사태는 트럼프의 취임 전부터 예고됐다. 트럼프의 한 지지자가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등이 아동매춘밀매단을 운영하고 흡혈 사탄의식을 한다는 피자 식당을 찾아가 총기를 난사한 사건, 2017년 8월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열린 대형 인종주의 집회에서의 폭동, 지난 10월 그레천 위트먼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해 반역죄로 처벌하려던 극우 무장단체원들의 체포 사건 등을 미국 사회는 ‘별종’들의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42년 전 얼 터너(35)라는 실직한 백인 남성은 의회 난입자들의 자화상이다. 경제는 엉망이고, 유대인과 흑인 등 유색인종들이 판을 치고, 정부는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에 터너는 정부를 타도하는 음모에 가담한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을 경멸한 터너는 워싱턴으로 가서 정부기관을 공격하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내전을 유발한다. 터너는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자인 윌리엄 루터 피어스 전 오리건주립대 교수가 1978년에 출간한 소설 <터너 일기>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 테러 등 현대 미국의 백인 극우·인종주의 세력과 그 활동에 큰 영향을 줬다. 의회 난입 사건도 소설에서 묘사된다. 소설에서 의회의 ‘반역자’들이 교수형 당하는데, 6일 의사당 앞에는 교수형 처형대가 세워졌다. 소설에서 그들의 ‘내전’ 과정에서 숨진 백인 여성이 신성시, 영웅시되는데, 지난 6일 숨진 한 백인 여성은 지금 ‘순교자’로 추앙받는다.

“집단폭력과 민병대 활동 물결은 미국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이런 것들을 대담하게 만드는 고위 공직자들이고, 공직에 있는 그런 지지자들이 우리의 정치 지형의 일부라는 것이다.”(캐슬린 벨루 시카고대 교수의 <내전을 일으켜라 : 백인 세력 운동과 민병대 미국>). 의회 난입이 있던 날 조 바이든의 당선 인증을 놓고 공화당 상원의원 6명, 하원의원 121명이 거부했다. 하원의원만을 놓고 보면, 인구 4명 당 1명이 거부한 셈이다.

트럼프가 법원과 의회에 제기한 선거 결과 번복 시도가 모두 각하된 것을 놓고, 한국 언론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한다. ‘개소리’일 뿐이다. 선거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구성되고, 그렇게 구성된 행정부와 입법부가 사법부를 만든다. 그런데, 그런 사법부에 선거 결과를 결정해달라고 매달린다? 사법부는 양심과 법률에 따라 판결할까? 미국 성인 4명 중 1명이 아니라 2명이 잠재적인 ‘의회 난입자’가 되면 어찌될까? 여론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결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안녕하지 않다. 정치적인 문제들을 검찰과 법원으로 가져가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안녕하지 않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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