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을 잡기 위한 방안으로 다주택자들의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할 것을 제안한다. 다주택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매물로 내놓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인 ‘공급 대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일시적이라고 해도 조세정의를 유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불로소득 환수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집값을 잡는 게 최우선 과제다.
|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새해 들어서도 집값 불안이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1월 넷째주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이 0.33% 올랐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서울은 0.09% 오르면서 34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고 상승 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4일 집값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한다. 이른바 ‘변창흠표 공급 대책’은 서울 도심의 역세권, 준공업지구, 저층 주거지 등에 공공 주도로 고밀도 개발을 해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는 게 핵심이라고 한다. 정부의 공급 확대 의지를 시장에 전달해 실수요자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당장의 수급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을 바탕으로 집에 대한 수요는 많은 반면, 정부의 공급 대책이 현실화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허가 기간 등을 최대한 단축해줘도 3~4년은 소요된다.
최근의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집값을 잡기 위한 방안으로 다주택자들의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할 것을 제안한다. 집을 두채, 세채, 네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매물로 내놓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인 ‘공급 대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들에게 당근을 주는 부동산시장판 ‘햇볕정책’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인상과 공시가격 현실화 등을 통해 보유세를 대폭 강화하고 양도세도 중과하기로 했다. 대신 보유세와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는 6월1일 전까지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면 양도세 중과를 유예해주기로 했다. 7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는 유예기간 동안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달 18일 부동산정책 관계기관 회의 뒤 “양도세 중과 완화나 유예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6월1일 중과 제도 시행이 다가올수록 다주택자의 매물이 많이 출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봐선 기대로 끝날 것 같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대신 자녀에게 증여를 하거나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버티기를 하는 모양새다.
매물이 나오기는커녕 되레 매물 잠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2만3675건으로 2019년 1만2514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양도세보다 세금 부담이 적은 증여를 선택한 것이다. 돈을 벌 목적으로 살지도 않는 집을 여러 채 보유한 다주택자들은 세금에 민감하다.
현재 2주택자는 소득세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 이상은 20%포인트 중과되는데, 6월1일부터 중과세율이 각각 20%포인트, 30%포인트로 올라간다. 소득세 기본세율은 이미 1월부터 최고세율이 42%에서 45%로 올랐다. 양도세 최고세율이 75%로 오르는 것이다. 여기에 지방세 10%가 붙으면 82.5%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3주택자가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오른 아파트를 팔면 양도차익 10억원 중 8억25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은 현행 세제 아래서 주택 매각은 집을 정부에 헌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증여세는 최고세율이 50%고 각종 공제가 있으며 지방세도 붙지 않는다. 매각보다 증여가 유리한 것이다.
일부에선 양도세를 인하한다고 집을 내놓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효과를 100% 장담할 수 있는 대책은 세상에 없다.
정부는 2019년 ‘12·16 대책’을 발표하면서 양도세 중과를 6개월간 유예한 바 있다. 조정대상지역의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면 양도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해준 것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이 집을 매각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 ‘10년 이상 보유’로 조건이 제한적이었고 처분할 수 있는 기간도 6개월로 짧았다. 무엇보다 양도세 인하가 아니라 중과 유예라는 점이 다주택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또 여야가 종부세법 개정안을 방기하면서 보유세 강화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게 하려면 중과 유예가 아니라 인하가 필요하고 조건도 너무 까다롭게 해선 안 된다. 또 집을 팔고 사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 적용 기간을 정할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들이 특정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집을 시장에 내놓게 적극적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는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 후퇴이며 부자감세라고 비판한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양도세는 거래세가 아니다.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소득세다. 부동산 양도차익은 불로소득이다. 철저히 과세하는 게 조세정의에 부합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들이 잘해서 양도세를 깎아주자는 게 아니다. 이들이 살고 있지 않는 집을 매물로 내놔야 무주택자가 집을 살 기회가 커지고 집값도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양도소득세 세무 상담이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 기본 방향은 보유세 강화와 대출 규제 등을 통해 다주택 보유를 억제하는 동시에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게 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주택시장을 실소유자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출범 초기부터 다주택자들에게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시라”고 압박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는 더 이상 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감소하지도 않았다. 통계청의 ‘주택 소유 통계’를 보면, 서울의 다주택자 비중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2년 13.1%에서 2017년 16.0%까지 커졌다가 2018년 15.9%, 2019년 15.7%로 약간 줄었다. 문재인 정부 이전 5년 동안 22% 증가한 뒤 2년 동안 1.9% 감소한 것이다. 다주택자 증가를 억제했지만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게 만들지는 못했다. ‘절반의 성공’, 더 정확히 말하면 ‘절반의 실패’라 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서울의 2주택 이상 보유 다주택자는 39만명이다. 집주인이 살지 않는 주택이 최소 39만채 이상 된다는 얘기다. 단순히 가정해서 이들 중 단 10%만이라도 집을 판다면 3만9천채 이상이 새로 공급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서울에서 신규 공급된 아파트 연평균 물량 4만2436채와 맞먹는 규모다. 만약 처분 물량이 20%, 30%로 늘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변창흠표 공급 대책과 시너지 효과를 낳으면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
물론 국민의힘이나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양도세 중과를 아예 폐지해서는 안 된다. 불로소득을 항시적으로 인정해주자는 건 조세정의를 통째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들은 여기에 더해 종부세도 내리고 공시가격 현실화도 하지 말자고 한다. 이건 주택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다주택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도록 일정 기간만 물꼬를 터준 뒤 다시 원상 회복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를 흔들림없이 추진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 6월1일부터 종부세율이 최고 2배로 오르고 공시가격 현실화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보유세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양도세 부담이 일정 기간 줄어들면 다주택자들이 퇴로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일시적이라고 해도 조세정의를 유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지금은 집값 안정이 더 절실하다. 불로소득 환수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집값을 잡는 게 최우선 과제다. 집값이 잡히면 전셋값도 안정될 수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직진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론 우회도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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