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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신문선과 오프사이드 / 김창금

등록 2021-02-08 14:50수정 2021-02-09 02:40

대중의 시대라고 하지만, 대중의 힘은 늘 ‘파괴의 위험’을 지닌다.

2006년 독일월드컵 한국과 스위스의 G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오프사이드’ 관련 발언으로 해설진에서 하차한 신문선 명지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당시 부심이 스위스 공격수 알렉산더 프라이의 골에 오프사이드 깃발을 올렸지만, 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 선수의 패스가 한국팀 수비수의 의도적인 터치에 의해 전달됐기 때문이다. 신 교수가 이런 점을 들어 ‘주심의 정심’이라고 정확하게 해설했지만, 대중은 분노했고 방송사는 그를 내쳤다. 그 장면 전에 오프사이드가 이뤄졌다고 하는 설이 제기되지만, 그땐 비디오 판독 같은 게 없었다.

신문선 교수가 재조명되고 있다. 방송사들이 과거 월드컵 중계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유튜브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올드팬들에게 자주 소환되는 것이다. “나는 저 때 심판 판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론에 다른 의견 가지면 배척당함” “저도 반성하겠습니다. 제가 무지했습니다” 등등 과거 감정적으로 대응했던 팬들의 댓글도 등장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리아스 카네티(1905~1994)는 <군중과 권력>(바다출판사)에서 군중의 심리가 방전(放電)에 의해 급속히 퍼진다고 했다. 공포를 내재하는 무리적 속성이 동질감과 정체성을 위해 방전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파괴욕을 분출시킨다고 본 것이다. 그 바탕에는 “신이 입었던 파멸과 공포의 갑옷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든 인간”이 있다. 그래서 “군중은 생겨나는 순간부터 더 많은 사람이 가세하기를 바라고, 밀집 상태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대중적 속성이 인터넷 시대와 결합해 특정 스포츠 선수를 겨냥할 때 오는 폐해는 평창올림픽 등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신문선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자신은 ‘소정 변관식’(1899~1976) 화가처럼 산다고 말했다. 때로는 지나친 발언으로 ‘적’도 많이 만들었지만, 타협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은둔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오히려 축구에서 벗어나 음악과 미술, 다도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를 통해 대중의 힘의 양면성과 개인을 생각해본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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