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모인 사람 대부분이 함께 ‘해고’되는 상황이었으니 ‘누구’를 가려서 명단을 읊을 이유가 없었다. 40여명의 야간 직원 중에 30명이 한꺼번에 해고자 명단에 올랐고 그날이 해고 통보를 하는 날이었다.
손영준ㅣ제조업 노동자
야간근무 전담조로 일한 적이 있다. 보통의 2교대 근무가 주야 교대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S회사는 밤 9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야간근무를 전담하는 야간조가 따로 있었다. 주간조는 보통 회사의 일정과 같이 운영되고 오후 5시까지가 기본 근무였고 잔업해야 할 파트만 따로 9시까지 일하고 야간조와 교대했다. 물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야간조 근무시간은 상당히 유동적이었으나 아침 8시까지 일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고 대체로 6시면 거의 대부분 퇴근했고 일이 많은 파트만 한시간이나 두시간 잔업했다.
들쭉날쭉한 발주 물량 때문에 야간조를 적극 활용해 맞추는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내가 입사한 뒤 6개월 정도는 굉장히 일이 많아서 잔업을 계속했고 인원도 계속 보충이 됐다. 처음에는 30명도 안 되던 인원이 나중에는 40명 가까이 늘어났다.
내가 일하는 파트에는 담당자가 없었고 차장이 나에게 직접 일을 가르쳐줬는데 부서장이기도 한 차장은 바빠서 오래 일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처음 한달 동안은 여기저기 물어보고 직접 부딪치며 일을 익혔다. 그리고 두달쯤 지나자 새로 입사한 한명을 나에게 붙여주고 일을 가르치라고 했다.
석달 만에 파트장이 되어서 보니 회사는 쉴 새 없이 바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빈자리가 많았는데 이제는 자리마다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사무실 칠판에 적힌 발주 내역은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매일 주간조와 교대했고 교대를 받았다. 일요일과 공휴일 구분 없이 6개월 정도를 거의 쉬지 않고 매일 출근했다. 중간에 인원의 반 정도씩 교대로 출근하면서 체력적 안배를 하기도 했다. 야간근무였기에 사기를 높인다며 퇴근한 뒤 아침에 24시간 영업하는 곱창 식당에서 회식도 했다.
바쁘고 고됐지만, 함께 밤을 새우며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 북돋워주며 나름 화기애애하게 일했다. 오래 일한 몇 안 되는 사람과 입사 1년이 안 된 많은 사람들이 큰 문제 없이 잘 어울렸고 일 자체는 습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한두달 반복해서 일하면 금세 적응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에 주말 근무가 딱 끊어졌다. 그다음 주, 그다음 주도. 그리고 잔업이 없어지고 일감은 눈에 띄게 확 줄었다. 기본 근무가 6시까지인데 어느 날에는 5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버스로 퇴근하는 나는 그날 다른 직원의 차를 얻어 탄 다음 지하철을 타고 조금 걸어서 집으로 갔다. 그렇게 꽉 조여져 있던 생산 현장은 느슨해지고 또 느슨해져서 뭔가가 탁 풀어져버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이 되었다.
차장은 출근한 직원들을 휴게실로 모았다. 아니, 원래부터 출근하면 휴게실에 모여 간단한 전달사항을 들었으니 일부러 모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 차장이 사람들을 일부러 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달 동안의 분위기가 그랬다. 오래 일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말들이 이미 이날의 분위기를, 그 순간을 짐작하게 하고 있었다.
따로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모인 사람 대부분이 함께 ‘해고’되는 상황이었으니 ‘누구’를 가려서 명단을 읊을 이유가 없었다. 40여명의 야간 직원 중에 30명이 한꺼번에 해고자 명단에 올랐고 그날이 해고 통보를 하는 날이었다. 의외로 해고자들은 덤덤했다.
“이제 내일부터 뭐 하지?”
“당장 일자리 알아봐야겠네.”
그런 말을 하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휴게실을 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공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이 출근한 사람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고 돌려보내는 차장의 의도를 나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기본 근무를 한 것으로 올리라고 사무실에 얘기해놨습니다.”
그것이 차장이 해고자들에게 해주는 마지막 배려였다. 그리고 나는 빈자리가 많은 현장에서 여러 기계를 조작하며 많지 않은 일을 처리했다. 원래 맡아 하던 파트는 일을 가르쳐준 동생에게 맡기고 그동안 틈틈이 다른 작업들을 조금씩 해봤던 경험을 살려 해고자들의 자리를 대신 채웠다.
나는 불과 석달 전에 정규직이 됐다. 정규직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는 해고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파트를 맡아서 일하고 있었고 다른 기계들도 다룰 줄 아는 게 많았으니까. 일감이 줄었다고는 해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언제 다시 일감이 늘 것인지 차장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자주 바꾸는 것과 같이 휴대폰 부품 업체의 일감도 들쭉날쭉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가 일감이 많을 때였고 그때는 일감이 바닥을 치는 때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하편은 다음주에 실립니다. 수상작 일부를 해마다 <한겨레>에 게재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