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미얀마 군부와 수치의 위험한 게임

등록 2021-02-15 14:55수정 2021-02-16 02:41

민주화 세력은 소수민족 문제에 발목이 잡혔고, 군부는 타협의 길을 잃고는 무력만에 기대는 상황이 됐다. 이는 인도-태평양을 둔 미-중 그레이트 게임의 열전지대, 아니 혼란스런 수렁을 미얀마에 조성한다.

지난 8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네피도/AFP 연합뉴스
지난 8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네피도/AFP 연합뉴스

정의길 ㅣ 선임기자

미얀마 군부와 아웅산 수치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게임은 로힝야족을 놓고 시작됐다. 미얀마의 권력을 다투는 게임이다. 지난 1일의 군부 쿠데타는 그 과정이다.

물론 도발은 군부가 했다. 미얀마군은 2017년 8월 초 미얀마에 살고 있는 무국적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로힝야 반군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였다. 소탕 작전은 미얀마 내의 140만명 로힝야족 중에서 75만명이 난민으로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가고, 학살과 강간 등 제노사이드 사태를 동반한 로힝야족 위기를 촉발했다.

미얀마 군부가 국제사회의 눈치도 안 보고 로힝야족을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것은 성동격서를 통한 일석이조의 노림수였다.

그 배경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문제, 특히 로힝야족에 대한 여론과 군부의 전통적 역할이다. 미얀마는 135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인구의 70%는 바마르(버마)족이 차지하고, 나머지 30%가 다양한 소수민족들이다. 소수민족의 독립이나 자치 문제는 미얀마의 고질적인 현안이며, 바마르족은 대부분 이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

군부는 미얀마 독립 이후 소수민족 문제를 대처하는 공식 기구였다. 독립 이후 북부의 카렌족 무장독립투쟁 등 소수민족들의 독립이나 자치 운동을 대처하면서 미얀마의 통일을 지킨 것은 군부로 평가된다. 바마르족 다수는 수치를 지지하나, 군부의 이런 역할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현행 헌법에서도 군부는 국방·국경·내무 3개 부처를 관할하도록 보장받았다. 국경 관련 부처가 소수민족 담당이다. 수치나 민주화운동 세력도 군부의 이런 역할을 부정할 수 없기에, 이런 기형적인 헌법에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무슬림인 로힝야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심하다. 바마르족은 로힝야가 미얀마 내의 역사적인 소수민족이 아니라 불법 이민 주민 집단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로힝야에 대한 여론은 수치를 지지하는 바마르족 주민뿐만 아니라 민주화 활동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군부는 로힝야족을 건드려 수치를 옭아매려 했다. 수치가 이 소탕작전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 다수 주민의 지지에 균열이 생긴다. 반면, 작전을 지지하면, 국제적 명성이 붕괴된다. 수치는 후자를 확실히 택했다. 수치는 국제재판소에 직접 출석해 군부의 작전을 옹호했다.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까지 일었다.

이로써 군부는 수치에게 권력의 한 축인 국제적 명성을 훼손하고,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군부는 절반의 승리만 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15년 총선 때보다도 더 많은 의석을 얻으며 압승했다. 수치는 로힝야 위기로 국제적 명성을 훼손하는 대신에 바마르족의 지지를 더욱 공고히한 것이다. 이 총선에서 의석 확대를 노렸던 군부는 부정선거 조사를 명분으로 총선 결과 수용을 거부해왔다.

로힝야 위기부터 지난해 11월 총선까지 과정은 미얀마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역학도 바꾸었다. 로힝야 위기 때문에 서방의 비판에 처한 수치는 중국에 접근했다. 앞서 군부가 2011년 민간과 권력을 나누면서, 미국과 수교하는 등 대중국 일변도 외교를 수정했었다. 로힝야 위기를 계기로 중국은 미얀마에서 군부 대신에 수치라는 더 정통성 있는 권력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미국은 어정쩡하게 지켜보는 형국이 됐다. 쿠데타가 나기 전에 중국은 수치와 군부의 타협을 중재했다는 후문이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양쪽에게 공존의 가능성은 멀어졌다. 상대를 부정해야만 한다. 상대를 부정해도, 자신이 사는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의 비극이다.

군부, 수치, 중국, 미국 모두 외통수로 몰리고 있다. 군부 정권의 재공고화나, 수치 민간정부의 재확립이나, 모두 가능성이 희박하다. 두 세력의 역관계가 유동화되는 가운데 혼란과 유혈이 어른거린다. 미국과 중국 역시 실효있는 개입은 불가능하다. 제재와 지지 모두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 민주화 세력은 소수민족 문제에 발목이 잡혔고, 군부는 질서있는 퇴각의 길을 잃고 무력만에 기대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인도-태평양을 둔 미국과 중국의 그레이트 게임의 열전지대, 아니 혼란스런 수렁이 미얀마에 조성되고 있다.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귀족부인 앞에 무릎 꿇은 사법 1.

귀족부인 앞에 무릎 꿇은 사법

[사설] ‘저가 논란’ 체코 원전 수주전, ‘원전 르네상스’ 맹신 말아야 2.

[사설] ‘저가 논란’ 체코 원전 수주전, ‘원전 르네상스’ 맹신 말아야

[사설] ‘대통령 독대 요청’ 한동훈 대표, 실질적 성과 끌어내야 3.

[사설] ‘대통령 독대 요청’ 한동훈 대표, 실질적 성과 끌어내야

[유레카] 홍명보 감독과 스포츠 정치 4.

[유레카] 홍명보 감독과 스포츠 정치

국제평화도시와 장갑차 [서울 말고] 5.

국제평화도시와 장갑차 [서울 말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