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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봉천동과 짜장면

등록 2021-02-28 15:21수정 2021-03-01 02:37

조기현|작가

며칠 전 나는 나고 자랐던 동네를 찾았다. 거의 15년 만이다. 무슨 고향 떠나 상경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중학교 때 바로 옆 자치구로 이사 갔을 뿐이다. 구태여 찾지 않다가, 최근 봉준호 감독의 1994년 첫 단편영화 <백색인>을 보고 찾아가게 됐다. <기생충>이 여기저기서 큰 상을 타니 한 방송사에서 봉준호의 시작을 알리는 <백색인>을 소개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영화 제목을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영화는 화이트칼라 남성의 무탈한 일상과 손가락이 잘려나간 블루칼라 남성의 삶을 유비한다. 계급적 유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주는 공간을 촬영지로 삼았는데, 그곳이 바로 서울 관악구 봉천3동이다. 숭실대입구역에서 봉천고개로 올라가면 언덕배기에 아파트가 솟아 있고,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왼편에 주택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쳐져 있지만, 영화 속 그곳은 아파트와 달동네가 선명하게 갈라져서 공존하는 모습이다.

나는 아파트 아래 주택가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알던 골목길이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흥미와 반가움을 넘어 어서 가야겠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영화는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봉천동이라는 낡은 이름을 버리고 ‘청림동’이라는 새 이름으로 갈아끼운 다른 곳이 되었지만.

날을 잡아 동네 곳곳을 쏘다녔다. 골목길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기억을 찾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집주인들의 재개발 찬성과 반대 전단을 두툼하게 두른 전봇대가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에서 나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갈등과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줄 것 같은 추억 사이를 오갔다. 이런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감각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철지난 향수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골목길을 걷는 내내 곧 허물어질 그곳의 운명과 공간에 얽힌 추억의 허약함과 세입자 처지의 사람들의 행방을 고민하며 자주 길을 잃었다.

그러다 늘 시켜 먹던 중국집이 있던 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은 주거용으로 개조해서 쓰는 듯했다. 13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집에는 나와 아버지가 남았다. 방학 때면 아버지는 내게 만원을 쥐여주고 일을 나갔다. 그럼 나는 동네에 있는 그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람들 말 속에서 그 중국집은 한 그릇을 절대 배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저씨 혼자서 주문받고 요리하고 배달하는 곳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나이가 들고서 그 아저씨가 왜 우리 집에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했는지 깨달았다. 짜장면 건네주며 집에 혼자 있던 아이에게 안부를 묻던 그였다. 아이가 혼자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킬 때는 꼭 간다는 철칙이라도 있었을까.

나는 갑자기 틈입한 중국집의 기억을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들려줬다. 그는 그 중국집이 새로 생긴 아파트 상가에 입주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곧바로 그곳을 찾아갔지만 그날 아저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꼭 찾고 싶었지만 결국 찾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영화처럼 가난과 부가 각자의 모습을 드러내며 공존하는 풍경도 분에 넘치는 시대가 됐다. 가난은 더 꽁꽁 숨겨지거나 아예 외부로 추방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옛날 봉천동을 그리움에 젖어 떠올릴 만큼 무탈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수입이든 주거든 여전히 불안정할 따름이다. 어쩌면 나를 이곳으로 이끈 동력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잡지 못하는 시대의 불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억의 관대함은 때때로 현실의 불안을 은폐하기도 한다. 과거의 추억을 더 나은 현실을 위해 쓸 수는 없을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도 공존을 위해 짜장면 한 그릇을 배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나는 봉천3동의 마지막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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